"단단히 잡아야죠," 4년 만에 다시 설 수 있는 올림픽이란 큰 무대. 국가대표 세터 염혜선(28)에겐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내년 1월 열리는 올림픽 예선을 앞두고 염혜선이 굳은 각오를 다졌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내년 1월 7~12일 태국 나콘라차시마에서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 예선에 출전한다. 여자부는 B조에서 카자흐스탄·이란·인도네시아를 상대한다. 조별리그 통과는 무난할 전망이다. 반대편 A조 1위가 유력한 태국과 결승에서 한 장의 티켓을 놓고 싸울 전망이다. 한국배구연맹은 이례적으로 V리그 일정을 중단했고, 배구협회는 예정보다 이른 지난 16일 대표팀을 소집했다. 28일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까지 합류한 뒤 일주일간 마지막 숨고르기에 들어간다.
라바리니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주전 세터는 이다영(23·현대건설)이었다. 부상으로 러시아에서 열린 대륙간예선과 아시아선수권에선 불참했지만 라바리니 감독은 스피드와 블로킹이 좋은 이다영을 신뢰하고 있다. 나머지 한 자리엔 여러 명의 선수가 발탁됐다. 그리고 라바리니 감독의 마지막 선택은 염혜선이었다. 라바리니 감독은 "내가 원하는 스타일에 부합하는 선수를 뽑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염혜선은 올해 국제대회에서 라바리니 감독으로부터 눈도장을 받았다. 8월 서울 아시아선수권에선 이효희 대신 급하게 투입됐지만 주전세터로서 팀을 잘 이끌었다. 이어 열린 월드컵에서도 이다영의 백업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특히 세르비아전 승리(3-1) 이후엔 라바리니 감독이 "염혜선이 퍼펙트하게 전술을 수행했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염혜선은 "외국인 감독이라 처음엔 긴장했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자신감도 얻었지만 메달권에 조금 못 미쳐 아쉽기도 했다"고 했다.
염혜선은 라바리니 감독과의 호흡에 대해 "신세계"라고 말했다. 그는 "통역과 의사소통은 불편하고. 볼 하나하나 지시를 내리신다. 세터가 중요한 자리다 보니 주문도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잘 하면 상관없지만 감독님이 원하는 플레이가 나오지 않으면 바로 피드백을 했다. '1토스 1평가'였다"고 웃었다. 염혜선은 "솔직히 힘들었다. 하지만 힘든데 재밌었다"고 했다. 그는 "아직은 (김연경, 양효진) 언니들이 있지만 팀의 중간급이라 내가 흔들리면 안된다"고 했다.
염혜선은 목포여상 2학년인 2007년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할 정도로 큰 기대릅 모았다. 2008~09시즌엔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했고, 신인왕도 차지했다. 2년차 이후 잠시 주춤했지만 고 황현주 감독의 지도를 받아 리그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2010-11시즌 우승 이후 팀도, 염혜선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태극마크에서도 한 동안 멀어졌다. 2016 리우 올림픽 직전에야 7년 만에 국가대표가 됐다. 염혜선은 "항상 기회가 오면 다시 대표팀에 뛰고 싶었다"며 "이번에도 감독님이 뽑아주셔서 정말 기뻤다"고 했다.
사실 올 시즌은 염혜선에게 '격동'의 시기다. 현대건설을 떠나 FA로 IBK기업은행에서 두 시즌을 치렀으나, FA 보상선수로 GS칼텍스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다시 한수지와 트레이드돼 KGC인삼공사로 갔다. 염혜선은 "GS로 간 뒤 좋은 세터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겠다란 생각을 했지만 곧 트레이드 될 거라는 얘기를 었다"며 "솔직히 GS칼텍스에 갈 땐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인삼공사에 오면서는 '정착할 수 있겠구나'란 안도감이 들었다"고 했다.
염혜선은 "채선아, 고민지, 노란 등 IBK에서 호흡을 맞췄던 선수들도 있어 적응이 렵진 않았다"고 했다. 이어 "디우프와 맞추는 시간이 부족했지만 워낙 좋은 공격수라 어려운 공도 잘 처리해 준다. 빠르면서도 높이가 있는 공을 좋아해서 최대한 맞춰주려고 한다. 디우프가 영어를 조금 하기 때문에 소통엔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서남원 감독님이 그만두셔서 많이 놀랐다. 하지만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며 "이영택 감독님은 센터 활용을 많이 하길 원하신다. 그 점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고 했다. 인삼공사는 전반기를 4위(6승 9패, 승점 16)로 마쳤다. 3위 GS칼텍스(9승 6패, 승점 28)과는 제법 격차가 있다. 염혜선은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우린 5세트 경기(15경기 중 7경기)가 많았다. 그만큼 저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후반기에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염혜선에게 이번은 두 번째 올림픽 도전이다. 그는 "리우 올림픽 때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다. 선수촌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을 보는 것도 신기했고, 많은 걸 배웠다. 하지만 8강에서 아쉽게 지고 나니 너무 속상했다"며 "이번에 꼭 티켓을 따서 다시 올림픽에 가고 싶다"꼬 했다. 난적 태국에 대해선 "세터 눗사라도 있고. 센터도 강하다. 우리가 배울 점도 있는 팀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기 때문에 잘 파고들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 올림픽은 2024년에 열린다. 그때가 되면 주축인 김연경과 양효진이 뛸 가능성이 낮다. 이번 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의 각오가 남다른 것도 '이번이 메달을 딸 최적의 기회'란 생각 때문이다. 염혜선은 "연경 언니도 그렇고, 기회가 쉽지 않다. 그래서 더 단단히 잡아야 한다. 모든 선수들의 마음이 같다"며 필승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