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새해가 쥐띠 해(경자년)라니, 다른 해보다 더 기분 좋고 기대되는데요.”
2020년 새해를 하루 앞두고 서울 화양동 한 카페에서 황희찬(24·잘츠부르크)을 만났다. 중앙일보와 단독인터뷰에 나선 그는 1996년생, 쥐띠다. 올 시즌 전반기 그는 유럽 무대를 종횡무진 휘저었다. 최근 귀국해 재충전 중이다. 말이 재충전이지, 그의 머릿속은 온통 축구다. “어디에 있다 왔는지” 묻는 첫 질문에 그는 “오전에 물리치료를 받고, 오후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쉬어야지 마음먹어도 조금 지나면 몸이 근질거려 못 참는다”며 웃었다.
황희찬은 2019~20시즌 유럽 무대의 태극전사 중 가장 괄목한 성장을 했다. 정규리그 14경기에서 6골·7어시스트,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도 3골·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축구협회(FA)컵까지 하면 22경기에서 9골·12어시스트다. 경기당 공격포인트 1개 이상의 엄청난 페이스다. 특히 디펜딩 챔피언 리버풀(잉글랜드)과 맞붙은 지난해 10월 3일 유럽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에서 그는 환상적인 드리블로 세계 최고 수비수 버질 판데이크(29·네덜란드)를 주저앉혔다.
잘츠부르크 구단은 황희찬의 이적료로 2700만 유로(약 350억원)를 책정했다. 5년 전 손흥민이 레버쿠젠(독일)에서 토트넘(잉글랜드)으로 이적할 때의 3000만 유로(약 390억원)와 비슷하다. 유럽 빅클럽은 그를 관찰하기 위해 거의 매 경기 스카우트를 보낸다.
그는 “(잘츠부르크) 감독님과 동료들 도움 덕분에 좋은 활약을 펼쳤다. 비시즌 한국에서도 성실히 준비하면서 기량 면에서 발전할 거라 믿는다”며 “2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나도 팬도 만족할 수 있는 재밌는 축구, 공격수답게 꾸준히 공격포인트 올리는 축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약점이던 투박한 플레이가 최근 세밀해졌다. 특유의 저돌적 돌파와 왕성한 활동량은 변함없다. 함부르크(독일 분데스리가 2부)에서 2골에 그쳤던 지난 시즌과 딴판이다.
황희찬은 “투박하다는 말을 들을 때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업그레이드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어떤 노력이었을까. 그는 “프리스타일 풋볼의 대가인 전권 코치를 찾아가 슛과 컨트롤 등 기술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또 롤모델이었던 루이스 수아레스(33·바르셀로나)의 역동적 움직임과 득점력뿐 아니라 네이마르(28·파리 생제르맹 )의 창의적 플레이까지 연구하며 두 선수 장점을 배우려고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황희찬은 올 시즌 ‘황소’라는 별명 외에도 ‘음메페’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황소의 울음소리에 세계적 공격수 킬리안 음바페(22·파리 생제르맹)를 합성한 별명이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묻자 “둘 다 칭찬이라서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2014년 12월 잘츠부르크에 입단한 황희찬은 5년 만에 새 둥지를 찾아가려고 한다.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러브콜이 쏟아진다.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지만, 잘츠부르크 구단의 결단에 달렸다. 어쨌든 올해는 그의 축구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모든 선수가 빅리그, 빅클럽에서 뛰는 꿈을 꾼다. 가장 중요한 건 어디로 가든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거다. 부상 없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목표를 수치로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황희찬은 “공격수니까 기록적인 부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욕심이 많다. 하지만 몇 골, 몇 어시스트로 목표를 세우기보다 잘 쉬고, 몸에 좋은 걸 먹고, 팀이 승리하는 데 집중하는 걸 목표로 하겠다. 그러면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부터는 앞으로 다가올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과 본선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막판 황희찬은 또 “앞으로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내게 맡겨진 짐을 잘 짊어지고, 모두로부터 ‘차세대 한국 축구를 이끌 선수’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