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배구가 올림픽 본선 무대 진출이라는 염원을 향해 다시 뛴다. FIVB 20년 만에 올림픽 본선 무대 진출을 노린 한국 남자 배구가 4년 뒤를 기약한다. 숙제와 가능성을 동시에 확인했다.
남자 배구 대표팀은 지난 11일 중국 장먼 스포센터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대륙 예선 준결승전에서 세계랭킹 8위 이란에 세트 스코어 2-3(25-22, 21-25, 18-25, 25-22, 13-15)으로 패했다. 지난해 9월에 열린 아시아 남자배구 선수권에 이어 다시 한번 이란의 벽을 넘지 못했다.
대회 전 임도헌 대표팀 감독과 주장 신영석(34·현대캐피탈)은 "힘과 높이에서 이란이 앞서지만, 수비 집중력과 올림픽 진출 열망을 앞세운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실제로 1세트는 안정감 있는 리시브와 좌우 측면 공격수들의 위력적인 오픈 공격을 앞세워 먼저 25점을 냈다.
그러나 우려한 대로 힘과 높이에서 밀렸다. 전열을 정비한 이란은 2세트부터 중앙 속공 위주의 전술로 대표팀을 공략했다. 9일에 치른 예선 B조 3경기 카타르전에서도 먼저 두 세트를 얻고도 중앙 공격을 막지 못해 풀세트 접전을 치러야 했다.
대표팀은 강서브로 상대 리시브 라인을 흔들고, 빈틈을 노려 득점 쟁탈전을 전개했다. 강팀을 상대로 불가피한 전략이지만 실현은 어려웠다. 범실을 감수하고도 강세로 나섰다. 그러나 세트 또는 경기 승부처에서 허무한 실점으로 흐름을 잡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4년 뒤 파리 올림픽에서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대 교체 주자들이 개별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 이번 대회에서도 개별 강점 활용은 잘했지만, 그 한계도 명확했다.
일단 2018~2019시즌 V-리그 MVP(최우수선수) 정지석(25·대한항공)의 컨디션이 아시아대륙 예선에서는 좋지 않았다. 카타르전에 이어 이란전에서도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서브, 오픈 공격의 성공률이 떨어지다 보니 수비에서도 악영향이 있었다.
결국 임도헌 감독은 이란전 3세트 중반부터 수비가 좋은 곽승석(32·대한항공)을 투입했다. 카타르전에서는 주포 역할을 해줘야 하는 선수의 사기 저하를 경계했지만, 이란전에서는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서브는 대표팀에서 가장 위력적으로 구사하는 나경복(26·우리카드)에게 맡겼다.
실제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효과는 있었다. 곽승석은 두 세트를 내준 뒤 반격한 4세트에서 좋은 수비와 허를 찌르는 득점을 해냈다. 나경복의 강서브 효과로 수비에 성공하고 득점까지 이어지며 점수를 좁히기도 했다.
그러나 두 선수는 득점 루트로 활용되지 못했다. 경기 내내 해결사 역할을 해낸 라이트 박철우(35·삼성화재)의 분전은 눈부셨고, 전광인(29·현대캐피탈)의 지원도 좋았지만, 상대 블로커 라인은 4세트 후반부터는 어렵지 않게 세터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대표팀의 공격이 단조로웠다는 의미다. 교체 선수의 실제 능력보다는 상대에게 그런 인식을 줬다는 게 중요하다.
벤치가 정지석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때, 한 템포 빠른 교체를 시도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대표팀에서도 주전과 백업의 공수 밸런스 능력이 차이를 좁히는 게 숙제다. 정지석, 전광인도 박철우가 보여준 해결 능력에 근접해야 한다. 대표팀에서의 경험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 남자 배구가 올림픽 본선 무대 진출이라는 염원을 향해 다시 뛴다. FIVB 고무적인 지점은 대표팀 모두 남자 배구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단호한 각오를 가졌고, 코트 위에서 보여줬다는 것이다. 세트 초반 득점에도 마치 매치 포인트를 만든 것처럼 큰 소리로 환호했다. 박철우, 신영석 등 베테랑 선수들의 투지에 후배들이 감화된 모습도 있었다. 중간 서열인 전광인도 후배들을 독려하기 위해 때로는 과한 제츠처를 했다.
대회 전에는 대표팀 선수들의 분전 의지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팬들도 이란전 4, 5세트에 보여준 집중력에 박수를 보냈다.
경기 뒤 박철우는 "올림픽을 또 못 나가는 것에 대한 부담을 후배들에게 넘겨준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목표가 있고 꿈이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들이 잘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누구보다 올림픽 무대에 대한 염원이 컸던 한선수, 신영석, 박철우에게 다음은 없을 수도 있다. 다섯 개 대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에 실패한 한국 남자 배구의 한(恨)은 다음 세대가 짊어진다. 실패의 울분과 염원의 크기를 절감했을 것. 이번 실패를 자양분으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