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게임사 넥슨은 작년 뒤숭숭한 한 해를 보냈다. 오랫동안 공략하고 있는 모바일 시장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잡지 못한 데다가 김정주 창업자의 매각 추진, 외부 손을 빌린 개발작 재정비 등으로 크게 요동쳤다.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넥슨은 지난해 연말을 지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2020년 새해에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위기는 또 찾아올 수 있다. 특히 글로벌 게임사로서의 경쟁력을 되찾지 않는다면 더 큰 시련을 맞을 수 있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매각 이슈로 본업 집중 못한 넥슨
넥슨은 작년 상반기 내내 매각 이슈로 시끄러웠다. 연초에 김정주 창업자가 넥슨 지주사인 NXC 지분을 팔겠다고 나서면서다.
말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매각 절차가 진행됐다. 도이치증권과 UBS가 매각주관사를 맡아 인수후보 업체들을 모아 구체적인 협상을 진행했다. 지난해 6월에는 몇몇 사모펀드와 국내 게임사 등이 참여한 본입찰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6개월간 게임업계 전체를 뒤흔든 넥슨 매각은 불발로 끝났다. 넥슨과 입찰 참가사 간에 매각 금액을 놓고 입장 차이가 커서 끝내 매각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넥슨은 매각 이슈에 본업인 신작 개발과 출시에 집중하지 못했다. 실제로 내부 직원들은 매각 여파로 불어 닥칠 구조조정 등에 대한 우려로 일손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다수의 신작을 들고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참석했던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에 불참한 것에서 엿볼 수 있다.
글로벌 게임사 경쟁력은 어디로
넥슨의 매각 무산 이유에 대해 여러 얘기가 나오는데, 공통적인 것은 ‘몸값’에 대한 견해차가 컸다는 점이다. 특히 넥슨은 15조원 이상을 받고 싶었으나 이 액수를 제시하는 업체가 없어 매각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김정주 창업자가 몸값을 너무 과하게 부른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다. 넥슨이 옛날 같지 않다는 얘기다.
넥슨은 실적에서 나쁘지 않다. 2019년 매출은 3분기까지만 봐도 2조1027억원을 기록해 2017년 이후 3년 연속 2조원대를 넘어섰다. 영업이익도 3분기까지 9457억원으로, 2018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9806억원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심지어 순이익은 3분기까지 1조1906억원을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달성한 2018년(1조735억원) 때보다 많다.
실적만 보면 넥슨의 몸값을 크게 불러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넥슨을 ‘글로벌 게임사’로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전 세계에서 골고루 매출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넥슨은 2011년 일본 증시에 상장된 직후만 해도 전 세계 주요 지역에서 매출이 고루 나왔다.
2012년 해외 지역별 매출 비중을 보면 중국 45%, 한국 27%, 일본 18%, 북미 5% 순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2018년에 중국 비중은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는 52%를 기록한 반면, 일본은 6%로 2012년과 비교해 12%포인트나 줄었다.
문제는 중국 매출을 이끄는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의 성장세가 꺾이는 추세라는 점이다. 지난해 던파의 중국 매출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넥슨은 던파가 무너지면 글로벌 게임사로서의 입지도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신작 성공이 절실…이정헌 “화력 집중할 시기 대비”
넥슨이 글로벌 게임사로서의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작의 성공이 절실하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 ‘피파온라인4’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등 기존 게임들의 여전한 인기에 힘입어 작년에 좋은 실적을 거뒀다.
그러나 성공한 신작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말에 선보인 신규 모바일 게임 ‘V4’의 흥행이 유일하다.
이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넥슨은 올해 전략을 바꿨다. 다작이 아닌 소수 정예작으로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던파를 성공시킨 허민 네오플 전 대표를 고문으로 임명해 개발작의 옥석가리기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데브캣스튜디오의 ‘드래곤하운드’, 왓스튜디오의 ‘메이플 오딧셋이’, ‘듀랑고 넥스트’, 원스튜디오의 초기 프로젝트, 넥슨레드의 ‘프로젝트M’ 등 5개의 신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여기서 살아남은 신작 중에서 ‘바람의나라: 연’과 ‘커츠펠’, ‘카운터사이드’가 올해 가장 빠르게 출시될 전망이다.
‘바람의나라: 연’은 세계 최장수 상용화 그래픽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기네스 기록을 가지고 있는 원작 ‘바람의나라’의 감성에 커뮤니티, 파티 플레이 요소를 더한 모바일 게임이다.
커츠펠은 코그(KOG)가 개발한 애니메이션풍 그래픽과 3인칭 프리뷰 시점의 듀얼 액션 온라인 게임이다.
카운터사이드는 스튜디오비사이드가 개발한 캐릭터 수집형 모바일 RPG(역할수행게임)로, 내달 4일 정식 출시된다.
이정헌 넥슨 대표는 창립 26주년을 맞는 올해가 앞으로 10년을 결정지을 굉장히 중요한 때라며 비상한 각오를 다졌다.
이 대표는 “신작들을 더욱더 갈고 닦아서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해 보려 한다”며 “2020년은 전열을 탄탄히 정비해 화력을 집중할 그때를 대비할 시점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