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사인 훔치기' 파문의 진원지인 휴스턴에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스포츠의 근본을 흔들고 야구와 리그의 품격을 저해한 구단을 본보기로 삼아서, 재발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줬다. 이 제재마저 미흡하고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어, 메이저리그는 당분간 사인 훔치기 파문으로 홍역을 앓을 전망이다. '키움 히어로즈' 폭탄을 안고 있는 KBO 리그의 사무국이 반면교사로 삼을만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지난 14일(한국시간) 제프 르나우 휴스턴 단장과 A.J 힌치 감독에게 향후 1년 동안 무보수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벌금 500만 달러를 부과했고, 2020, 2021시즌 신인 드래프트 1·2라운드 지명권을 박탈했다.
정정당당한 승부라는 절대 원칙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휴스턴은 2017시즌에 전자 장비를 실시간으로 사용해서 사인을 훔쳤다. 외야에 카메라를 설치해 상대 배터리의 사인을 찍고, 그 영상을 확인한 선수나 구단 직원이 더그아웃 통로에 있는 쓰레기통을 치거나 휘슬을 부는 방식으로 타자에게 알려줬다. 지난해 11월, 휴스턴 전 소속 투수 마이크 파이어스 등 내부자 4명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파문을 커졌고 사무국은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두 달 동안 조사한 뒤 내린 결정이다.
여파가 크다. 짐 크레인 휴스턴 구단주는 사무국의 발표 직후 르나우와 힌치를 해고했다. 당시 벤치 코치를 맡던 알렉스 코라 보스턴 감독도 유니폼을 벗었다. 속임수는 그의 발상으로 알려졌다. 현역으로 뛰었던 카를로스 벨트란 뉴욕 메츠 신임 감독은 데뷔전도 치르지 못하고 물러났다. 사실상의 경질이다. 2018시즌까지 타격 코치를 맡던 데이브 허진스 토론토 코치는 결백을 주장했고, 조사위도 무관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의심을 받고 있다.
현역 선수와 지도자뿐 아니라 불명예 은퇴한 레전드까지 비판을 쏟아냈다. "차라리 약물을 복용한 타자와 상대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는 LA 다저스 투수 알렉스 우드의 말이 모든 상황을 대변한다. 모든 타자가 "타이밍 싸움이다"고 말하는 타격이다. 속구와 변화구 구분뿐 아니라 구종까지 아는 타자를 투수가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 야구팬들은 휴스턴의 2017 월드시리즈 우승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외친다. 계획성 있는 리빌딩으로 강팀 반열에 오른 휴스턴이기에 괘씸죄가 더해졌다. 현재 파문은 진행형이고, 현역 선수를 향한 철퇴도 예상된다. 보스턴도 같은 의혹을 받고 있다.
1920년, 월드시리즈 준우승팀 시카고 화이트삭스 소속 선수들이 승부 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적발되며 흑역사로 남은 '블랙 삭스 스캔들', 2007년, 정상급 빅리거 다수가 포함된 금지 '약물 스캔들'에 버금가는 파급력이다. 이제 야구를 잘하는 팀은 의심부터 받게 됐다.
사무국은 근본과 품격을 지키려고 했다. 예상보다 빠르고 강한 대응을 했다. 현장과 프런트 수장에 내린 자격 정지 처분은 전망을 웃도는 수위라는 평가다.
더 주목되는 부분은 드래프트권 박탈이다. 휴스턴은 내야수 카를로스 코레아, 조지 스프링어, 알렉스 브레그먼 등 비교적 빨리 빅리그에 데뷔하고 스타 플레어로 올라선 1라운더가 많다. 월드시리즈 패권을 노릴 수 있는 팀이 됐다. 마치 휴스턴이 갖게 된 과욕을 근원을 차단시키려는 조치로 보인다. 2017 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에 패한 LA 다저스의 사령탑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시간을 거스르기 위해 애를 쓰진 않는다"면서도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가 해당 구단에 내린 징계를 지지한다"고 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보여준 의지는 KBO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야구도 매년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야구팬에 피로감을 주고 있다. 콘텐트 경쟁력은 암흑기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 사무국은 부정적인 이슈를 막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구단의 강력한 제재와 여론 심판에도 개인 일탈은 끊이지 않고 있다. '원 아웃제' 적용에 당위를 부여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장기적이고 지속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조직에 대한 제재'다. 이건 정운찬 커미셔너와 사무국의 역할이지만 매번 솜방망이다. 구단이 심판에 금품을 건네며 승부 조작을 의심하게 한 '최규순 게이트' 때도 금전 대가와 무관한 개인 거래라며 해당 구단에 1000만원을 부여했다. 아홉 구단이 연루된 2017년 '트레이드 뒷돈' 파문 때도 주범인 키움은 130억원이 넘는 돈을 뒤로 챙겼지만, 고작 벌금 5000만원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키움은 그동안 이장석 전 대표이사의 비위와 경영권 분쟁으로 야기된 논란으로 야구계의 품격을 저해했다. 스포츠와 어울리지 않은 단어가 쏟아졌다. 지난해 10월에는 옥중경영 파동이 불거졌다. 2018년 11월에 '총재의 권한에 관한 특례'를 적용해 영구 퇴출 조치를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구단에 마수를 뻗쳤다. 현장과 감독을 이은 불법 통로던 박준상 전 대표와 임 모 고문 변호사는 마치 '옥바라지' 대가를 받는 듯 상식 수준을 벗어나는 연봉과 자문료를 챙겼다.
내부 알력 다툼도 가관. 한쪽은 옥중 경영의 실체를 고발하기 위해 움직였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도리어 감사 대상으로 올린다. 이장석 전 대표의 사람인 줄 알았던 허민 이사위원장은 점령군으로 보인다. 의혹만으로 장정석 전 감독을 경질하고, 자신의 사람을 사령탑에 앉혔다. 2군 구장에서의 갑질 논란에 이어 현장 개입이 의심될만한 행보를 했다.
키움 선수단은 마치 휴스턴처럼 젊은 선수들이 급성장하며 주축이 됐고, 개인보다 팀워크가 돋보이는 팀이다. 매력이 있다. 그러나 조직 수뇌부는 현장과 선수들이 만든 성과에 숨었고, 시간에 기댔다. 힘으로 권한을 행사하고 술수로 이익을 도모한다. 현재 지배 구조를 감안하면 제2의 이장석과 허민이 등장해도 이상할 게 없다.
KBO는 뒤늦게 구단의 경위서를 받았고, 법률과 경제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가동했다. 아직 조사 결과, 처분 내용과 방향성은 나오지 않았다. 해를 넘겼고, 석 달에 다가섰다. 현장은 스프링캠프 개막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은 태생이 특수한 구단으로 여겨졌다. '키움이니까 그렇지'라는 인식도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도를 넘어섰고, 리그 전체에 악영향을 미쳤다. 아직은 선수단과 프런트가 분리되어 인식되지만, 작은 일로도 싸잡힐 수 있다. KBO가 이장석 개인뿐 아니라 키움 구단의 경영 실태 자체에 접근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KBO는 정운찬 총재 체제 내내 '클린 베이스볼'을 허공에 외쳤다. 이번 조사와 조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비위가 의심되는 구단의 단장과 사장이 FA(프리에이전트) 제도 개선 등 리그 풍경을 바꿀 수 있는 주요 사안에 목소리를 내는 자체를 개탄하는 시선도 많다.
누구든 개인의 사욕이 구단뿐 아니라 업계를 망치고 있다는 자책이 들만큼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휴스턴에 내린 조치가 주목받는 이유다. 지명권 박탈과 또 다른 여러 조치는 현재 키움 선수단의 정체성인 '젊은 야구'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은 억울할 수 있는 키움 팬도 건강한 조직이 만드는 야구를 기다려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