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를 구축한 두산, '만년 하위' 꼬리표를 떼어낸 KT, 플레이오프를 달군 키움의 사령탑이 공통으로 꼽은 성공 원동력이 있다. 주장의 존재감이다.
개인 성향, 포지션 그리고 성적과 리그 내 위상과 야구팬이 갖는 이미지는 제각각이지만 팀의 목표를 향해 가는 여정에 구심점 역할을 해내며 코치진과 동료들의 무한 신뢰를 얻었다. 하위 팀 주장의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볼 순 없지만, 상위 팀에는 반드시 좋은 리더가 있다.
2020시즌도 각 구단의 상황과 목표는 제각각이다. 키움, 삼성, 롯데 그리고 KIA는 새 사령탑 체제로 도약을 노린다. 두산은 챔피언 수성, SK는 정상에 재도전한다. LG와 한화는 현 사령탑이 계약 마지막 시즌이다. 선수단과 코치진 그리고 프런트가 같은 목표를 바라봐야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는 무대. 차기 시즌도 주장은 그 가운데서 가교가 돼야 한다. 물론 개인 성적도 소홀할 수 없다.
신임 주장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선수는 양의지(33)다. 지난해가 넘기기도 전에 선수단 중론을 모았고 그가 적임자로 평가됐다. 이동욱 감독도 흔쾌히 수락했다. 이적 2년 차지만 투수와 야수조와 두루 소통하는 포지션이다. 4번 타자와 주전 포수를 모두 맡으며 높은 팀 기여도를 보여준 실질적 리더이기도 하다. 공(功)은 동료에 돌릴 줄 알지만, 문제는 냉정하게 지적할 줄 아는 성향이다. '몸값을 해야 한다'는 소신은 선수단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는 "소통을 통해 시너지를 발휘하면서도 경쟁이 제대로 이뤄지는 팀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롯데 민병헌(33)은 정식 주장이 됐다. 지난해 후반기에 임시로 맡았고, 허문회 감독이 취임한 뒤에도 완장을 이어 달게 됐다. 스타 플레이어, 이적생이 많은 팀에서 소통 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 취임식에서 "야구 철학에 관해 얘기를 해봐야 한다"던 허문회 감독은 이내 그를 적임자로 낙점했다. 연말 열린 시상식에서도 성민규단장을 포함한 세 사람이 긴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준비된 주장이다.
한화 신임 주장은 이용규(35)다. 선수단의 지지를 받았다. 지난 시즌에 일탈 행보로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까지 받았다. 팀은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속죄라는 단어가 과하지 않지 않을 만큼 성숙해진 자세와 빼어난 퍼포먼스가 필요하다.
SK 최정(33)과 삼성 박해민(30)도 데뷔 처음으로 주장을 맡았다. SK는 지난 시즌 막판 난조와 포스트시즌 난조로 자리한 이상 기류를 극복해야 한다. 기존 주전 이재원은 경기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간판타자 최정에게 책임감을 더 부여했다. 생각이 많은 선수인 만큼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최선의 방향을 찾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허삼영호의 1대 항해사가 된 박해민도 어깨가 무겁다. 명가 재건과 개인 성적 반등을 동시에 노린다.
김현수(32)는 LG 주장을 연임한다. 10시즌을 뛴 전 소속팀 두산에서도 캡틴은 해보지 않았다. 이적 2년 차를 맞은 LG에서 리더 체질이 증명됐다. 선수단과 지도자 모두 평가가 좋다. 외부 야구인도 그의 리더십을 재조명할 정도다. 창단 30주년을 맞아 더 높은 위치를 노리는 LG의 버팀목이다.
KT 유한준(39)과 키움 김상수(32)도 연임이다. 유한준은 이강철 감독이 말버릇처럼 고마운 마음을 전할 만큼 헌신적인 자세를 보여줬다. 김상수도 투수조지만 야수조까지 아우르며 젊은 팀의 리더 역할을 잘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산은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이 공식 발표되기 전에도 이미 오재원을 낙점했다. 내부 신뢰 정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