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다. 새 시대로 향하는 길목에 선 체육계도 그 첫 걸음인 민선 지방체육회장 선거 과정에서 산통을 겪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 체육회와 228개 시·군·구 체육회는 지난해 12월 15일부터 올해 1월 15일까지 지방체육회장 선거를 통해 새 수장을 선출했다. 지난해까지는 해당 시도의 자치단체장이 당연직 시도 체육회장을 맡았지만 지난해 1월 15일 국회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의 체육회장 겸직 금지 내용을 담은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시·도체육회장 및 시·군·구체육회장을 민간인으로 선출, 정치와 스포츠를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기울인 결과다.
이렇게 선출된 새 지방체육회장들은 16일부터 공식적인 임기에 들어가 2023년까지 3년 동안 회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대부분의 지역은 이미 당선자들이 업무에 돌입했지만 일부 지역은 아직 수장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표류 중이다. 일부 지역이 재선거 혹은 법정 공방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실시한 선거에서 민선 첫 경기도체육회장에 당선됐다가 취소된 이원성 당선자를 비롯해 인천, 춘천, 천안, 양산 등 전국 곳곳에서 당선 무효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가장 먼저 당선 무효 상황에 맞닥뜨린 이원성 당선자는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주말 동안 긴급회의를 소집했다고 하는데 전화도 아니고 문자로 결과를 통보받았다"며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방적 문자 통보부터, 1기 체육회장 임기가 3년인데 피선거권을 5년간 제한하는 것까지 일반적으로 들어도 너무하지 않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선관위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한 이 당선자는 "할 일이 산적해있는데 빨리 이 문제가 정리되어야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선거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체육회의 '낙하산 인사'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당선 무효 결정에 정치적인 이유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현재 이 당선자는 수원지방법원에 경기도체육회장 당선무효, 선거무효 효력정지 및 재선거실시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상태다.
이미 임기를 시작했던 강인덕 인천시체육회장 당선자도 부정 선거운동을 이유로 당선 무효가 결정됐다. 이미 대한체육회 인준을 받은 강 당선자는 선관위의 결정에 불복, 법정 대응에 나섰으며 이로 인해 체육회와 대립 중인 상황이다. 천안시체육회의 이기춘 당선자도 향응 제공 등 불법 선거운동을 이유로 당선이 무효 처리됐고 양산시도 정상열 당선자가 당선 무효 결정에 불복,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처럼 당선 무효 사태가 연달아 발생하자 한 지방체육회 관계자는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하자고 치른 선거인데 정치판보다 더 정치판 같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스포츠평론가인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은 민선 지방체육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진 당선 무효 속출 사태에 대해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라고 주장하면서도 (선거에)정치를 끌어들이는 모순된 주장이 많이 나왔다"며 "체육계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아직 수직적인 면이 있다. 우리 사회와 비교했을 때 체육계의 분위기는 20~30년 뒤처져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지자체장과 친분을 강조하는 등 '정치적인' 색깔을 내비치는 후보들이 많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민선 1기 지방체육회장 선거는 스포츠에서 정치를 분리해내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물론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체육 단체운영비 중 약 80%가 지자체 보조금인데다 대부분의 체육시설물을 지자체가 관리·감독하는 환경 속에서, 처음부터 완벽하게 정치와 분리된 선거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최 소장도 "분명 선거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고 혼란스러운 부분, 모순된 점도 많다. 첫 선거인 만큼 혼란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1기'에서 불거진 문제를 개선하고, 목표로 삼은 스포츠와 정치의 분리를 달성하느냐다. 최 소장은 "잡음이 있더라도 선거를 통해 직접 권력을 교체하는 과정을 경험해봐야 한다.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지금의 잘못된 부분들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직 체육회장 임기 중에 체육회에서 선관위를 꾸리다보니 모순이 있다. 다음 선거 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는 방법이나 지자체 선거와 함께 실시하는 방법 등을 고려해 볼 법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