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영화 ‘기생충’ 기자회견이 끝난 후 호텔의 중식당 ‘홍연’의 대형 룸.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배우 송강호·이선균·조여정·박소담·이정은·장혜진·박명훈과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공동 각본가인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 등은 홍연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중식 코스 요리가 시작되기 전, 홍연의 정수주 주방장이 ‘기생충’ 팀에게 깜짝 선물을 했다. 바로 영화 속에 등장했던 ‘채끝 짜파구리’였다. 본 식사가 시작되기 전 환영과 축하의 의미를 담아 딱 두 젓가락 분량의 전채 음식으로 만든 것이다. 종업원들이 ‘주방장의 깜짝 선물’이라고 설명하며 채끝살이 올려진 짜파구리 그릇을 식탁에 올리자 자리에 있던 배우와 스태프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한 마디씩 했던 말이 바로 이것. “영화 촬영하면서 진짜 먹어본 조여정이 빼고 우리도 ‘채끝 짜파구리’를 오늘 처음 먹어본다. 어떤 맛일지 정말 기대된다. 주방장의 센스 있는 선물에 고맙다.”
9일(미국 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4관왕에 오르면서 폭발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영화 속 부잣집 사모님 연교(조여정 분)가 가정부 충숙(장혜진 분)에게 부탁해서 먹었던 ‘채끝 짜파구리’다. 농심의 인스턴트 짜장면 짜파게티와 봉지라면 너구리를 섞어서 함께 요리한 후 토핑으로 비싼 한우 채끝살을 올렸던 음식. 영화 속에선 가난과 부의 상징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기생충’을 본 전 세계 영화팬들이 너도나도 채끝 짜파구리를 먹어보겠다는 통에 짜파게티와 너구리의 판매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고 있는 때. 정작 ‘기생충’ 속 배우와 스태프들은 이 유명한 채끝 짜파게티를 아무도 먹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2008년 홍연 오픈 때부터 일했고, 2010년 헤드 주방장이 된 정수주 주방장 역시 “오늘 이 음식을 ‘기생충’ 팀에게 선물하기 위해 난생 처음 짜파구리를 끓여봤다”며 “처음 해보는 음식인 데다, 이미 네티즌들이 올린 짜파구리 기본 레시피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 기본 맛 그대로 조리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 주방장의 채끝 짜파구리 만들기 과정. 짜파게티 & 너구리 면과 분말은 따로 삶아서 준비한 다음, 삶아낸 면을 웍(중식 전용 팬)에 올리고 짜파게티 스프를 넣고 볶으면서 올리브유를 추가해 소스를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했다. 다음 너구리 면의 스프를 조금씩 추가하면서 센불에 볶았다. 한우 채끝살은 소금·후추로 간을 해서 먼저 구워뒀다가 짜파구리 면을 중간불로 줄인 후 채끝살을 올려 한 번 웍을 돌려준 다음 그릇에 담았다.
정 주방장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짜파게티 그 맛 그대로를 내드리려고 일부러 양파, 파 등의 채소들도 추가하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정 주방장의 채끝 짜파구리를 먼저 시식해본 스태프는 “별다른 가미를 안 했지만 중식당의 워낙 센 불과 주방장의 숙련된 웍 움직임 덕분에 평소 먹어보던 짜파구리와는 전혀 다른 맛있는 맛을 냈다”고 전했다.
이날 점심 식사 전 ‘기생충’ 팀에 전달된 깜짝 선물은 또 있었다. 호텔 델리 팀이 만든 ‘오스카 2단 딸기 생크림 케이크’다. 조선호텔 델리 인기상품인 딸기 생크림 케이크 위에 오스카 트로피를 얹은 모양이다. 오스카 트로피의 재료는 설탕. 트로피 실물을 직접 보고 만든 것도 아닌 데다 설탕을 굳힌 무게가 상당해서 케이크를 누르면 안 되기 때문에 설탕 트로피의 다리가 좀 짧아졌는데, 봉 감독과 배우들은 케이크 트로피를 “센스 있는 선물”이라며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1914년부터 중구 소공로를 지켜온 웨스틴조선호텔 바로 옆에는 환구단이 있다. 고종 때 하늘의 신에게 제를 올리던 곳이다. 김혁규 풍수지리학자는 웨스틴조선호텔의 자리를 두고 “행운과 복이 넘치는 길한 터”라고 한 바 있다. 특히 ‘기생충’ 팀이 지난해 4월 제작발표회, 오늘 기자간담회를 가진 2층 연회장은 환구단의 모습이 바로 내다보이는 곳으로 호텔 내에서도 명당으로 꼽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