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은 전도연'이고, '역시 전도연'이라는 추임새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터졌다. 기대를 하면 기대를 하는대로, 우려가 슬며시 고개를 들라 치면 보란듯이 '전도연스럽게' 배우 전도연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전도연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존재감의 정석이다.
약 1년 여 만에 선보이게 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김용훈 감독)'에서 전도연은 짐승같은 촉으로 또 한번 괴물같은 연기력을 뽐냈다. 묵언수행을 하듯 대사 한마디가 없었더라도 관객들을 충분히 홀려냈을 매력이다. 대사 한마디, 움직임 하나로 관객들의 시선을 이끄는 내공. 감질나는 초반 분량은 '일부러 저러나' 싶을 정도로 여우같은 활용도를 자랑한다.
인터뷰 내내 '나 진짜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라며 꺄르르 웃기 바빴던 전도연은 어느 때보다 높은 텐션으로 '50분 순삭'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전도연은 "사실 내가 이렇게 유쾌한 사람인데 늘 작품에 가둬뒀다"고 토로하며 "무거운 장르 혹은 기본 예의를 차려야 하는 영화를 홍보하면서 '하하호호' 할 수는 없지 않냐. 날 그렇밖에 써먹을 수 없는 감독들이 안타깝다"는 너스레로 분위기를 쥐락펴락했다.
그런 의미에서 야심차게 택한 차기작은 전도연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자 기분좋은 설레임을 동반하는 작품. 송강호·이병헌과 손잡고 역대급 대작을 준비 중이다. "저도 1000만 영화 해보고 싶어요"라며 마지막까지 거침없는 '솔직함'을 내비친 전도연은 "'기생충'을 보면서 오스카라는 새 꿈이 생겼다. 가능성이 열렸으니 꿈도 꿔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의 난, 신인의 마음으로 최고를 꿈꾸는 여배우다. 닥치는대로 일하고 싶다"며 한결같이 빛나는 열정을 어필했다.
-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된 작품이다. "개봉일까지 미뤄지면서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개봉하게 됐으니 축하해 달라.(웃음)"
-영화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가편집본을 보고, 언론시사회 때 최종본을 봤다. 솔직하게 말하면 가편집본을 봤을 땐 좀 놀랐다. '내가 이런 영화를 찍었나?' 싶더라. 예상했던 영화가 아니었다. 그래서 겁이 나기도 했다. '영화가 진짜 싫으면 홍보 어떻게 해야 돼'라는 걱정을 했을 정도다. 근데 언론시사회 때 보고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생각보다 잘 나와 안심했다."
-예상했던 영화는 어떤 영화였나. "난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블랙코미디'로 봤다. 가편집본은 블랙코미디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장르적 이견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최종본은 감독님의 노력과 고생이 느껴졌다. 내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기가 진짜 민망한데 이번엔 많이 웃었다.(웃음)"
-시나리오는 어떤 점에 끌렸나. "인물 하나하나가 좋았다. 감독님도 그 인물 요소요소를 사랑한다는게 느껴져서 더 좋았다."
-시간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막구조다. "나조차도 헷갈린 부분이 있었다.(웃음) 하지만 그게 영화를 이해하거나 몰입하는데 방해될 정도는 아니라 생각한다. 관객들이 볼 때도 불편함은 없었으면 싶다. 편하게 해석되길 바란다."
-영화 시작 약 50분 만에 등장한다. "촬영도 연희처럼 중간에 들어갔다. 나에게는 첫 촬영이었지만, 현장은 이미 초반부를 다 찍고 한창 적응이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가 빨리 영화의 톤을 찾고 녹아들어야 했다."
-전도연이 등장했다는 것을 알리면서, 극에는 자연스레 합류했다. "첫 등장신은 당연히 임팩트가 있을 줄 알았다. 그게 '전도연 때문이다'는 말들을 해주시는데 사실 시나리오 자체가 강렬했고 파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 하고, 할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었다. 일부러 더 힘을 빼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처럼 하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래도 때리는 신은 겁났다.(웃음)"
-NG 없이 한번에 끝냈나. "완전히. 너무. 잘. 하하. 굉장히 신경쓰고 걱정했던 신이다. 설탕으로 만든 소품이라고 해도 차라리 맞는게 낫지, 누군가를 때리는 신은 부담스럽다. 제대로 때리려 했고, 한번에 끝내고 싶었다. 진짜 한번에 끝낼 수 있어 후련했다."
-첫 촬영은 어떤 장면이었나. "미란(신현빈)의 사고 현장을 찾아가는 신. 꼭 남의 현장 같았다.(웃음) 장소도 되게 산 속 같은 곳이어서 너무 낯설었다. 신현빈 배우는 감정적으로 격양이 돼 있었고, 감독님은 스모그에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현장에 어떻게 적응하지' 싶더라. 첫 촬영치고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사이는 좋았다. 하하."
-마지막 대사는 시원하면서도 연희스러웠다. "재미있었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해도 연희스러웠을 것이고,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연희스러웠을 것이다. 연희는 이미 그 자체만으로 캐릭터화 돼 있는 인물이었다. 그 대사는 시나리오부터 있었고 처음엔 '이 말을 왜 해야하는거야?' 의아하기도 했다. 근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까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이 툭 나오더라. '네 까짓게'라는 속내도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그동안 연희는 태영(정우성) 같은 남자를 보면서 살지 않았나.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말인거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