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지난 19일 수원이 뜨거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된 상황이었지만 K리그 팬들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이 수원월드컵경기장으로 향한 이유는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G조 1차전 수원 삼성과 비셀 고베(일본)의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경기에는 무려 1만7372명이라는 구름관중이 몰렸다. 주중 경기로서는 이례적인 수치다. 지난해 수원의 홈경기 평균관중(8841명)을 한참 뛰어넘는 숫자이자 수원의 주중 ACL 홈경기 최다 관중 신기록이었다.
수원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물론 많은 팬들이 홈 팀인 수원의 시즌 첫 경기를 즐기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그리고 또 많은 팬들의 의중은 한 명의 슈퍼스타를 '직관(직접관람)'하기 위함이었다. 그 주인공은 고베의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였다.
이니에스타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로 꼽히는 선수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라리가) '명가' 바르셀로나 황금기의 주역이자 세계를 지배했던 스페인 축구대표팀의 중심이었다. 이니에스타는 2018년 바르셀로나를 떠나 고베로 이적했다. 중계권 대박을 터뜨리며 거금을 손에 쥔 J리그가 이니에스타를 품었고, 그의 연봉은 무려 3000만 달러(약 363억원)로 추정되고 있다.
많은 K리그 팬들이 수원에 온 이니에스타를 환영했다. 36세 베테랑 미드필더가 은퇴하기 전에, 그러니까 더 늦기 전에 이니에스타가 그라운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은 열망을 드러냈고, 이 열망이 관중수 대박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이니에스타는 결정적 패스로 고베의 결승골에 기여하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이니에스타가 이끈 흥행력. K리그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K리그 팬들이 스타에 목마르다는 것이다. 맹추위와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도 그들은 스타를 보기 위해 주중 밤 경기를 찾았다. 지금 K리그에는 안타깝게도 이런 열정을 가질 만한 슈퍼스타가 없다.
스타가 남아있을 수 없는 시스템이 정착된 듯 하다.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국내 선수들은 유럽으로 향한다. K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외국인 선수가 중국으로 간다는 건 이제 공식이 됐다. 이제 김신욱(상하이 선화), 김민재(베이징 궈안) 등 K리그 정상급 국내 선수들의 중국행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까지 왔다. K리그에서 잘하는 선수가 외국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현상. '셀링리그' 이미지를 모두가 인정하는 시대다.
또 한국 축구스타는 A대표팀에서만 볼 수 있다는 강한 인식 역시 K리그의 스타 부재와 맥을 같이한다. 축구 팬들은 스타로 인해 움직인다. 스타가 있는 A대표팀 경기는 최근 거의 대부분 매진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K리그 팬들의 심장을 흔든 하나의 소식이 전해졌다. 기성용의 K리그 복귀였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뉴캐슬을 떠난 기성용이 K리그 복귀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K리그 팬들은 환호했다. K리그 팬들의 스타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최적의 선수 중 하나가 기성용이었다.
그는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10여년을 활약했다. 3번의 월드컵을 경험했고, A매치 110경기를 뛰며 센추리클럽에 가입했으며, 캡틴으로 한국 대표팀을 오랜 기간 이끌었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주역이자,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의 주역이기도 했다. 셀틱(스코틀랜드) 스완지 시티(웨일스) 선덜랜드(잉글랜드) 등 유럽에서 활약하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인 대표적인 선수로도 꼽힌다.
이런 기성용이 K리그로 돌아온다는 것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선수로서의 경쟁력을 넘어 스타 가뭄에 목말랐던 K리그 팬들에게 오아시스같은 역할도 해낼 수 있었다. 이니에스타가 수원에서 보여준 것 처럼 말이다. 이니에스타처럼 단 번에 엄청난 흥행 대박을 터뜨릴 수는 없을 지라도 기성용으로 인한 K리그 팬들의 관심 증가와 더 늦기 전에 기성용을 '직관'하기 위한 움직임은 분명 K리그 전체 흥행에 기여를 할 수 있었다. 특히 K리그 흥행 1위 FC 서울이 기성용을 품었다면 그 효과는 배가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무산됐다. 기성용과 친정팀 서울은 끝내 협의에 이르지 못했다. 기성용을 원했던 전북 현대도 협상을 포기했다. 협상 시기, 위약금 등 기성용과 서울 구단은 감정의 골만 깊어진 채 협상을 끝냈다. 진실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수원에 온 이니에스타로 인해 K리그 팬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지만, 서울을 떠난 기성용으로 인해 안타까움이 커졌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K리그 팬들이 기성용을 놓친 서울을 향해 날선 비판을 하고 있다. 이해할 만한 반응이다. 서울의 계약 능력과 태도 등에 대한 분노도 담겨있겠지만, 이보다 더 큰 감정은 스타 갈망에 대한 K리그 팬들의 진심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K리그는 스타가 간절하다는 의미다.
지난 시즌 K리그는 희망적인 발전을 일궈냈다. 흥행면에서도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스타가 부족한 현실을 넘어서지 못했다. 해결책도 없다. 옆나라 일본과 중국이 지갑을 열어 스타들을 영입하는 사이 K리그는 오히려 지갑을 닫으면서 버텼다. 수년 째 이러고 있다. 한계에 부딪힐 날이 올 수 밖에 없다. 2020시즌 개막을 앞두고 있는 K리그에 던진 이니에스타와 기성용의 메시지. 울림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