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원천동에 위치한 홈플러스 원천점 풀필먼트센터(FC)에서 직원이 온라인 주문상품을 상자에 담고 있다. 홈플러스 제공 대형마트들이 '새벽배송'을 하지 못하고 군침만 흘리고 있다. 기존 매장을 거점 삼아 누구보다 빠른 배송이 가능하지만, 정부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일반 배송 역시 의무 휴업일에는 할 수 없는 형국이다. 그사이 규제가 없는 쿠팡 등 e커머스 업체들은 배송력을 앞세워 대형마트를 빠르게 잠식해 가고 있다.
위기의 대형마트…온라인에 사활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온라인 쇼핑의 급성장 등 외부 환경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데다 각종 규제가 장기화하면서 매출이 급감하고 있어서다.
롯데쇼핑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은 4279억원으로 전년 대비 28.3% 줄어들었다. 그중에서도 마트와 슈퍼의 손실이 컸다.
실적이 침체한 것은 이마트도 마찬가지다. 이마트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1507억원으로 전년보다 67.4%나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유통업계 1~2위 업체들이 서민 밀착형 점포인 마트와 슈퍼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이 숫자로 확인된 셈이다.
업계에서는 대형마트의 부진 원인으로 '찾는 고객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e커머스의 당일배송과 새벽배송이 낯설지 않은 상황에서 대형마트를 찾을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이커머스가 당일배송과 새벽배송 등으로 '접근성'까지 갖추니 경쟁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제 대형마트가 주춤한 사이 쿠팡 등 소셜 커머스 3사는 종합 온라인 유통그룹이 됐다. 쿠팡의 작년 추정 거래액은 약 12조원. 위메프, 티몬은 각각 약 5조원과 3조원 수준이다. 이들 3사의 작년 거래액만 20조원에 이른다. 또 이베이코리아(약 16조원), 11번가(8조원) 등에서도 각각 연 10조원 안팎이 거래된다.
배달 강화했지만 규제에 '발목'
대형마트들은 부랴부랴 배송 서비스 강화 등 온라인 쇼핑 강화 전략을 내세워 반전을 노리고 있다.
국내 2위 대형마트인 홈플러스는 지난해부터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몰 배송 기지인 '풀필먼트센터(FC)'로 바꾸고 있다. 대대적인 매장 구조조정 계획을 밝힌 롯데마트도 올해 상반기 중에 서울 주요 지역 매장 2곳은 FC로 리뉴얼할 계획이다.
문제는 대형마트들이 잇따라 배송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정부 규제에 발목을 잡혀 반쪽짜리 서비스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새벽배송이 대표적이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문을 닫는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점포 배송을 할 수 없다. 즉 새벽배송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일배송도 규제에 막혀있기는 마찬가지다. 현행법상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 번' 의무휴업일(공휴일 중 매월 2회)에 점포 문을 닫아야 한다. 휴업일에는 배송할 수 없다는 얘기다.
방법은 있다. 마트가 아닌 별도 법인을 두면 된다. 이마트가 쓰고 있는 방법이다. 이마트는 전국에 멀쩡한 매장들을 놔두고 수천억 원을 들여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지었다. 법인명은 'SSG닷컴'이다. 이를 통해서는 새벽배송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물류센터가 있는 수도권 지역만 새벽배송이 가능한 상황이다. 반면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규제에 막혀 아직 새벽배송 첫발조차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이미 시작부터 늦은 데다 규제에 발목까지 잡힌 탓에 오픈마켓 같은 온라인 전문몰을 따라잡기에는 한참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대형마트의 읍소에 의무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은 가능하게 하자는 내용의 유통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하지만 소관 위원회 심사 단계에 멈춰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모바일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분이 사실상 사라진 가운데 영업 기준만 구태를 따르고 있다"며 "온라인 쇼핑몰들과 동등한 규제 하에서 경쟁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