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명품' 배우가 우리 곁으로 왔다. 북한군보다 더 실감난 연기로 '사랑의 불시착' 신드롬에 버금가는 '표치수 앓이'를 만든 양경원(39). 건축학과를 졸업해 뒤늦게 배우의 꿈을 펼쳤고 연극 무대를 누비며 드라마로 발을 내딛은지 얼마 되지 않아 '아스달 연대기' 이후 단 두 작품만에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직까진 본명보다 표치수로 더 불리지만 아쉬움은 전혀 없고 앞으로도 그가 연기한 캐릭터로 불리는게 그의 바람이다. 소속사도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2주간의 언론사 인터뷰를 모두 마쳤다. 극중에선 '츤데레'로 통했지만 실제 모습은 젠틀하고 겸손한 매력의 '완전체'였다.
-요즘 인기를 실감하나. "촬영 당시에는 집과 촬영장만 오가다보니 잘 몰랐는데 주변의 반응과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알아봐주는 인사에 너무 감사하다. 마스크를 낀 채 전철을 탔는데 '저 사람 표치수 아니야'라고 수군거리더라. 가리면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는 카페에서도 아까 일하는 분이 '드라마 재미있게 봤다'고 해줬다. 늘 감사할 따름이다."
-아직 여운이 남아있나. "사람들이 계속 보고 싶다. 늘 감사한 현장이었고 시간을 보내서인지 아쉬움이 더 크다."
-처음부터 표치수 역할이었나. "아니다. 캐스팅 디렉터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봤고 1차에는 홍창식·박수찬·표치수까지 열어두고 진행됐다. 그리고 2차때 표치수로 불렀다."
-표치수는 어떤 인물이었나. 사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카리스마있고 무서운 역할인 줄 알았다. 나중에 정반대의 인물인걸 알고 더 연기하고 싶었고 욕심이 나더라. 또 행동 하나하나에 밉지 않고 연민이 느껴졌다."
-북한 사투리가 쉽지 않았을텐데. "2015년 '로기수' 뮤지컬을 했을 때 배웠다. 이번에 백경윤(북한말 전문가) 선생님께 배우며 그때 기억을 더듬었다. 선생님을 자주 만나 사투리를 익혔지만 많이 부족했다. 북한 다큐멘터리도 찾아보고 새터민들의 영상도 여럿 봤다."
-제작진이 요구한 연기가 있었나. "작가님도 그렇고 PD님도 그냥 맡겨줬다. 고사 지내던 날 작가님이 미국에서 들어왔는데 배우들마다 일일이 코멘트를 해줬고 나를 따로 불렀다. 표치수 잘 부탁한다고. 그게 오히려 부담이 돼 사실 악몽도 꿨다.(웃음) 안 그래도 욕심이 났는데 더 사명감이 활활 타오르더라. 걱정은 곧 설레임이 됐고 기대됐다."
-이렇게 인기를 끌 줄 알았나. "겸손이 아니라 작가님이 다 만들어놓은 캐릭터다. 살짝살짝 애드리브를 하긴 했는데 99%가 대본이다. 이 캐릭터는 누가 했어도 표치수에 완벽히 녹아들었을 정도로 대본을 보면 몰입도 높을 수 밖에 없었다."
-손예진과 합이 정말 좋았다. "촬영 전 따로 합을 맞추지 않았다. 슛이 들어가면 윤세리로 변한다. 현장에서는 친절하고 배려도 잘 해주는데 슛만 들어가면 정말 윤세리가 돼 상대 배우가 잘 연기하도록 리드한다. 처음에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첫사랑의 아이콘 손예진이라 미워하기 힘들었는데 나를 표치수로 봐주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티키타카 연기가 나왔다. 괜히 톱스타가 아니란 걸 알았다."
-실제 성격도 표치수처럼 재미있나. "사실 표치수는 개그 욕심이 있는 건 아니다. 항상 진지하고 절박하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주변에서 봤을 때 웃긴 것이다. 그 지점이 시청자들이 보기엔 유쾌했다. 양경원은 웃긴 사람은 아니다. 극단에서 회식할 때 내가 입을 열면 주변에서 하품부터 한다."
-표치수를 연기하며 본인에게 영향을 준 점이 있나. "표치수는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은 아니다. 윤세리에 대한 마음도 열려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표현이 조심스러웠다. 가끔 좋은 의도가 자칫 누군가에겐 오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런 조심스러움은 닮고 싶은 부분이다."
-캐릭터를 지울 필요는 없지만 다음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텐데. "표치수란 색깔이 너무 진하게 남아있어서 다른 색으로 보여지기까지 한 번더 스텝이 필요하다. 강한 이미지가 있었던 배우가 표치수를 연기했다면 그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나는 갑자기 나타났으니 다음에 대한 부담감이 크긴 하다.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다."
-배우 전 건축 일을 했다. "건축학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건축사무소에서 2년 6개월여 일했다. 그때도 춤과 노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못 했다. 한시라도 빨리 시도하고 아니면 빨리 돌아오자는 마음으로 주말이나 퇴근 후 연기·노래 등 트레이닝을 받았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을텐데. "회사를 그만두고 모아둔 돈을 조금씩 쓰다가 나중에는 궁핍한 삶도 살아 봤다. 차비가 없어서 연습을 못 나가는 상황도 있었다. 차비가 없어서 연습을 못 가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며칠 뒤 돈이 생기면 다시 연습을 갔다."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하던데. "아내는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늘 이 사람을 존경하고 있다. '우리는 잘 살 것이다'는 서로의 믿음이 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노래 실력을 공개했다. "(진)민호는 친한 동생이다. 대학가요제 대상도 받은 친구다. 그 친구가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반만'을 개사해서 불러보자고 했다. 워낙 좋은 노래인데 개사로 자칫 민폐가 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웠는데 좋았다. 음원차트 100위권 밖에 있다가 쭉쭉 올라오더라.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차고 들어주는 사람에게 감사했다. 이 기회에 민호의 음악이 좋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아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소속사가 없는데 필요하지 않나. "연락은 많이 오는데 아직 어느 회사를 들어가고자하는 결심이 서진 않았다. 어떤 회사를 만나는지도 내 인생에 있어 중요하니 고믾이 많다."
-2020년 출발이 좋다. 다음 계획이 궁금한데. "어떤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경중은 중요하지 않다. 배우로서 도전하고 모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좋은 배역이 있다면 많은 오디션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