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한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과연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항공업계는 비상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 중인 HDC현대산업개발로서는 새로운 계산법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심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설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예정대로 인수 작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달 운영자금 4000억원 조달을 위해 유상증자를 준비하고 있다. 내달 회사채 공모를 포함해 1조200억원 규모의 금융권 차입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예정대로 4월 말을 목표로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중국·러시아·터키·카자흐스탄 등 해외에서도 HDC와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과 손잡고 2조4000억원을 베팅하며 아시아나 인수전에서 승자가 됐다. 인수전에서 경쟁 후보였던 애경그룹보다 7000억원이나 더 써냈다. 예상보다 높은 가격을 써냈지만 정 회장은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한 과감히 베팅했다. HDC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재계 17위로 껑충 뛸 수 있기 때문이다.
‘형제의 난’으로 인해 원치 않게 현대자동차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정 회장은 독립 이후 재계 10위 진입을 목표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로부터 독립한 뒤 아이파크 브랜드를 발판으로 HDC의 기업 가치를 키웠다. 그리고 HDC 신라면세점 사업도 잇따라 히트시키며 남다른 사업 수완을 드러내 왔다. 아시아나항공 인수까지 성공하면 마음속으로 그렸던 재계 10위 진입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발판을 다지게 된다.
정 회장은 ‘승자의 저주’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직접 뛰었다. 아시아나항공 계열사 사장 및 임원 면담을 적극적으로 하는 등 내부 구조 파악에 심혈을 기울였다. 당초 정 회장이 판단했던 것보다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황이 좋지 않다. 2018년 280억원 흑자였던 아시아나항공은 2019년 427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올해 적자 폭은 역대급이 될 전망이다. 정 회장으로서는 인수하더라도 당장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그래서 정 회장이 통매각이 아닌 분리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인 에어부산을 재매각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을 통인수하면 에어부산은 HDC의 종손회사로 편입된다. 그러면 HDC는 2년 안에 지분 100%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에어부산의 경우 덩치가 크기 때문에 지분 확보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에 HDC로서는 자산 규모가 작은 자회사인 에어서울을 흡수하는 반면 에어부산은 분리 매각할 수 있다. 에어부산의 분리 매각한다면 재정적인 부담을 덜 수 있고 빡빡한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자금을 충당할 수도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임원 면담이 중단되는 등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며 "HDC의 결정에 따라 저가 항공사의 경우 시장이 재편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