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인해 전 세계가 고통 받는 가운데, 재정난을 이기지 못하고 선수단을 전원 해고한 사례가 호주에서 나왔다.
호주 프로축구 A리그 소속팀 퍼스 글로리는 지난달 말 선수단 전원과 일부 스태프에 대해 해고 통보를 내려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퍼스는 지난 시즌 A리그 우승팀으로, 올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도 참가 중이다. 본선 F조에서 울산 현대(한국), 상하이 선화(중국), FC 도쿄(일본)와 한 조에 묶여 있다.
AFC 소속 국가 중 유일하게 프로축구리그를 추춘제(가을에 리그를 시작해 이듬해 봄에 마치는 일정)로 운영하는 호주는 코로나19 확산세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리그를 강행했다. 지난달 23일까지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르다가 안팎의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 24일 리그 중단 결정을 내렸다.
A리그 사무국은 리그 중단을 선언하며 “다음달 22일에 리그를 재개해 잔여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호주 내 바이러스 확산세를 감안할 때 이를 실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현지 분석이다. 호주는 1일 현재 4828명의 확진자와 20명의 사망자를 냈다. 매일 200~300명 가량 확진자가 늘고 있다.
‘리그 중단 결정’이 사실상 ‘조기 종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퍼스는 선수단에 칼을 빼들었다. 토니 세이지 구단주 명의로 클럽 내 모든 등록선수와 일부 스태프를 해고했다. 해고에 따른 보상금도 제시하지 않았다. ‘선수 없는 축구팀’이 탄생한 셈인데, 사실상 팀 해체 수순으로도 읽힌다.
호주 축구계는 즉각 반발했다. 존 디둘리카 호주프로축구선수협회(PFA) 회장은 “2주 전까지만 해도 바이러스가 퍼진 동부 해안가 도시들로 선수들을 내몰던 구단이 리그가 중단되자마자 선수를 해고한 건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PFA는 세이지 퍼스 구단주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세이지 구단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항변했다. 지난달 29일 폭스 스포츠와 인터뷰에서 그는 “리그가 멈췄다. 우리는 더 이상 수입이 없다. (선수단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면서 “머지 않아 A리그 다른 구단들도 내 결정을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퍼스 글로리가 ‘선수단 전원 해고’라는 극약 처방에 나선 건 올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F조의 판도를 뒤흔들 변수가 될 수 있다. 퍼스와 두 경기를 남겨둔 울산에겐 호재다. 퍼스가 선수단을 구성하지 못해 몰수패를 당할 경우, 울산의 3-0 승리로 기록된다. 번거로운 호주 원정을 피한다는 장점은 덤이다. 퍼스를 상대로 먼저 한 경기를 치러 접전 끝에 1-0으로 이긴 도쿄 입장에선 앉아서 골득실을 도둑 맞는 셈이다.
혹여 나머지 호주팀들이 재정난을 견디지 못해 퍼스의 발자취를 따른다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는 퍼스를 비롯해 멜버른 빅토리(E조)와 시드니 FC(H조)까지 A리그 소속 세 팀이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