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호 NC 2군 작전·주루코치. IS포토KBO는 검증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된 선수들의 기록 수정 내용과 해당 경기, 오류 사유 등을 따로 상세하게 정리하고 있다. 전준호 NC 코치의 통산 도루 수가 549개로 줄어든 이유도 설명돼 있다. 배영은 기자 역사를 바로 잡으려다 보면 '선의의 피해자'도 나오기 마련이다. '대도'라는 별명의 원조인 전준호(51) NC 코치가 바로 그랬다.
전 코치는 현역 시절 독보적인 도루 능력을 자랑한 통산 최다 도루 기록 보유자다. 2009년 현역 통산 550번째 도루를 마지막으로 은퇴해 역대 유일한 '550도루'의 주인공으로도 기록됐다. 그러나 과거 기록 검증을 하다 하필이면 도루에서 오류가 하나 발견돼 은퇴 11년 만에 통산 도루 수가 549개로 수정됐다. 작업에 참여한 KBO와 스포츠투아이 관계자 모두가 가장 진땀을 흘린 순간이기도 하다.
전준호의 도루가 박종일의 도루로 수정된 1996년 9월 20일 광주 해태-롯데전 기록지. 1번타자로 선발 출장한 전준호가 8회부터 박종일로 교체됐고, 박종일은 연장 10회 1사 1루서 투수 땅볼로 선행 주자를 아웃시키고 1루에 나갔다가 2루 도루에 성공했다. 그러나 합산 정석을 표시하는 오른쪽 박스 스코어에는 전준호의 성적란인 첫 번째 줄에 도루가 표시돼 있고, 그 아랫줄 박종일의 도루 칸이 비어 있다. 사진=KBO 제공 전 코치는 롯데 소속이던 1996년 9월 20일 광주 해태전에서 2루 도루를 한 개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기록지 검수 결과 전 코치가 아니라 8회 교체 출장한 박종일이 연장 10회 2루 도루에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기록을 맡은 담당자가 경기 상황에는 박종일의 도루로 바르게 표시했지만, 경기 후 최종 성적을 집계해 박스스코어를 표기하는 과정에서 박종일이 아닌 전준호의 이름 옆 칸에 도루를 체크해 벌어진 일이었다.
KBO 관계자는 "집계가 끝난 뒤 가장 미안한 분이 바로 전 코치님이었다. 통산 도루 500개를 완성하고 은퇴했는데, 11년 만에 하나가 취소되면서 하필이면 마지막 단위 숫자 '0'이 바뀌게 돼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며 "도루 하나가 빠지게 된 뒤부터는 '전 코치님의 도루가 다른 선수에게 잘못 넘어간 건 없을까' '제발 하나라도 나와서 다시 550개로 복원됐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전 코치님이 출전한 경기 기록을 한참 동안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끝내 나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결국 KBO는 기록 정정 발표를 앞두고 NC 구단을 통해 전 코치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다행히 전 코치는 '대인배'의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통산 550개가 아니라니 아쉽지만, 잘못됐던 기록이 정정됐다는 건 오히려 좋은 일이다. 언젠가 내 기록을 깨는 후배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반면 현역 시절 통산 100승을 넘긴 레전드 투수 세 명은 기분 좋은 '기록 보너스'를 얻었다. 현역 시절 대표적 '이닝 이터'였던 정민철 한화 단장은 개인 통산 완투 수가 하나 더 늘었다. 빙그레(한화의 전신) 소속이던 1992년 7월 30일 대전 삼성전에서 연장 11회를 완투(무승부)하고도 당시 성적 집계 오류로 집계에서 빠진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동시에 정 단장의 입단 첫 해 완투 기록은 10회에서 11회로, 통산 완투 기록은 60경기에서 61경기로 각각 많아졌다. 정 단장은 "이런 일이 없었다면 평생 60완투로만 알고 살았을 것이다. 역시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라는 점을 다시 상기했다"고 KBO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 한용덕 한화 감독은 빙그레 소속이던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 동안 매 시즌 기록지 오류로 삼진이 1개씩 누락된 점이 확인돼 통산 탈삼진이 1341개에서 1344개로 늘었다. 한 감독은 "승 수나 이닝 수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탈삼진 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확한 숫자를 잊게 됐다"며 "나조차 잊고 있었던 기록을 찾아주셨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지금 야구하고 있는 선수들에게도 좋은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고 기뻐했다.
이강철 KT 감독 역시 해태(KIA의 전신) 소속이던 1989년과 1992년 기록지 오류로 하나씩 누락됐던 탈삼진을 되찾았다. 개인 통산 기록에 탈삼진 2개가 추가돼 1749개에서 1751개로 늘었다. 또 1995년 9월 3일 태평양과의 인천 더블헤더 1차전 자책점이 3점에서 2점으로 낮아지면서 그해 평균자책점 역시 3.30에서 3.24까지 내려갔다. KBO 관계자는 "이번 검증 작업에서는 평균자책점이 수정된 투수들이 특히 많이 나왔다"며 "대부분 투구 이닝을 잘못 표시하거나 자책점을 잘못 계산한 사례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물론 수정된 기록들 가운데는 스타 선수의 것보다 그렇지 않은 선수의 것들이 훨씬 많이 포함됐다. 그러나 15년에 걸쳐 15시즌의 기록을 검증한 이번 작업은 오히려 그런 이유로 더 가치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많아 일일이 기억하기도 어려울 안타 하나, 도루 하나, 탈삼진 하나, 출전 경기 하나가 잠시 프로 무대를 밟았던 누군가에게는 그 어느 순간보다 소중한 기억이자 발자취일 수 있어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무명 선수의 작은 플레이 하나조차 꼼꼼하게 살피고,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해 틀린 부분을 '바로 잡았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40주년을 향해 가는 KBO 기록 검증의 진정한 의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