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니 인판티노(50)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으로 불시에 멈춰섰던 유럽프로축구가 조심스럽게 시즌 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 달라는 묵직한 권고였다.
인판티노 회장은 11일(한국시간) FIFA 211개 회원국에 메시지를 보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3가지 우선 순위를 얘기한 이번 메시지를 통해 인판티노 회장은 "우리의 원칙이자 우선 순위이며, 우리가 경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북돋아주고자 하는 첫 번째는 바로 건강"이라며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리그를 재개해선 안된다는 뜻을 전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전세계적 '코로나 브레이크'가 어느새 한 달을 훌쩍 넘겼다. 2020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은 물론, 축구만 놓고 보더라도 유럽프로축구 5대 리그가 벌써 한 달째 중단됐고 A매치도 모두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축구 없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중단 기간이 길어지면서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이로 인한 재정 문제를 우려한 각국 리그들은 조심스럽게 재개 시점을 논의하고 있다. 벨라루스, 타지키스탄 등 코로나19 피해가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은 나라는 리그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대만도 프로야구와 함께 프로축구 개막을 강행하기로 했다.
시즌 막바지에 어쩔 수 없이 멈춰섰던 유럽프로축구 5대 리그도 재개 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무관중 경기를 감수하고서라도 5월 초 시즌을 재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크리스티안 자이퍼트 분데스리가 CEO는 지난 9일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2부리그 팀의 경우 절반이 큰 파산 위험에 놓였다"며 "시즌을 취소하면 1부리그도 5팀 정도 심각한 문제에 빠질 것"이라고 재개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른 방역 대책과 심판진 운영 등에 대한 별도 규칙도 마련할 예정이다. 분데스리가를 필두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이탈리아 세리에A를 비롯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도 5월과 6월 사이 리그를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판티노 회장의 메시지는 바로 이런 움직임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 내에서 코로나19 확산세는 정점을 지났다는 평가지만 전체 확진자 수가 80만 명을 넘고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주요 국가에서 하루에 3000명 이상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아직 100% 안전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판티노 회장은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조금 더 기다리는 게 낫다"며 리그 재개에 신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각국 리그의 재개 움직임을 조금 더 늦춰야 한다는 권고인 셈이다.
또한 인판티노 회장은 이번 메시지를 통해서 FIFA가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돼 재정 문제에 부딪힌 회원국 협회나 리그에 대해 대책을 마련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지난 4년간 함께 힘써온 덕분에 긴급 구호 펀드에 있어선 상당히 탄탄한 재정 상태에 있다"고 설명한 그는 "우리가 가진 돈은 FIFA가 아닌 축구의 돈이다. 축구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도울지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고 의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