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많은 것이 낯설 수밖에 없는 이적생. 그러나 한화 정진호(32)는 팀 외야에 빠른 속도로 믿음을 심고 있다.
정진호는 지난 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SK와 한화의 2020시즌 개막전에 7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정진호가 정규시즌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것은 2011년 프로 데뷔 이후 처음. 스프링캠프에서 펼쳐진 치열한 주전 좌익수 경쟁에서 승리했고, 당당히 팀의 '베스트 멤버'로 시즌 첫 경기에 나섰다.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존재감도 뽐냈다. 1회말 2사 후, SK 중심 타자 최정이 한화 선발 워윅 서폴드의 공을 받아 쳐 외야 좌중간 깊숙한 곳으로 장타성 타구를 날렸다. 이때 빠른 속도로 달려온 정진호가 정확한 지점으로 몸을 날려 타구를 잡아내면서 그대로 이닝이 끝났다. 자칫 초반부터 실점 위기를 맞아 흔들릴 뻔했던 서폴드에게 큰 힘이 된 호수비였다. 서폴드는 완봉승으로 한화의 개막전 9연패를 끊었다.
한화가 오래 기다렸던 장면이다. 한화가 지난해 말 2차 드래프트에서 두산 소속 외야수 정진호를 뽑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화 팬들은 두 팔 벌려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정진호는 선수층이 두꺼운 두산에서 늘 '다른 팀에 가면 주전으로도 뛸 수 있는 선수'로 꼽히곤 했다. 외야 선수층이 워낙 두꺼운 팀 소속이라 만년 백업 선수로 분류돼야 했지만, 공수에서 모두 안정적인 정진호의 기량이 아까워서였다. 역대 최초의 5회 이전 사이클링 히트와 두 차례의 인사이드더파크 홈런처럼 인상적인 기록을 만들어내며 존재감을 알리기도 했다.
한화 이적 후에도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새 팀에 적응해 나갔다. 이용규와 제라드 호잉이 버티고 있는 한화 외야에서 좌익수 한 자리를 놓고 선수 아홉 명이 경쟁했고, 페이스가 빨리 올라오지 않았던 정진호가 남몰래 속을 끓였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캠프가 끝나고 연습경기를 치르는 동안 결국 코칭스태프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정진호의 안정감이었다. 그렇게 정진호는 한화라는 새 팀에서 프로 생활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정진호 역시 새 팀에서의 앞날에 기대가 크다. "한화 이적이 내게는 어떻게 보면 새로운 기회 아닌가. 긍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며 "
앞으로는 타격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게 숙제다. 일단 개막전에선 착실한 희생번트와 팀 배팅으로 하위 타선의 임무에 충실했다. 그는 "타격이라는 게 참 쉽지 않다.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떨어지고, 완전히 안 좋았다가도 언젠가는 올라가지 않나"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팀에서 원하는 내 역할을 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규정 타석(144경기 기준 446타석)을 채우겠다'는 목표에도 변함이 없다. 데뷔 후 9년 간 아직 한 번도 해낸 적 없는 이정표라서다. 그는 "두산 시절에는 한 시즌에 300타석 가까이(2018년 299타석) 나섰던 게 개인 최다였다"라며 "규정 타석을 채운다는 것 자체가 내가 꾸준히 경기에 나가면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낸다는 의미라 올해 꼭 이루고 싶다"고 거듭 다짐했다. 일단 출발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