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개막을 앞둔 지난달 말, 프로축구 성남FC 훈련장인 탄천종합운동장. 자체 청백전 중 선수들 움직임이 느슨해지자, 골키퍼 김영광(37)이 불호령을 내렸다. 그의 한마디에 수비수 몸놀림이 다시 기민해졌다. 악착같이 붙고, 끝까지 따라가 공을 살려냈다. 그라운드 한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김남일(43) 감독은 미소를 지었다. 김 감독은 “(김)영광 영입하길 잘했다. 실력은 물론, 후배를 잘 이끌 수 있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김남일 감독과 김영광이 명가 재건을 위해 손잡았다. 지난해 성남은 K리그1 9위에 그쳤다. 축구협회(FA)컵은 일찌감치 탈락했다. 마지막 우승이 2014년 FA컵이다. K리그 7회 우승, FA컵 3회 우승(이상 일화 시절 포함)에 빛나는 명문으로서 자존심 구길만 한 일이다.
올 초 성남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선수 시절 성남은 맞붙기 싫은 팀이었다. 다시 그런 팀을 만들고 싶은데, 경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고심 끝에 김영광을 찾았다. 김 감독은 김영광에게 “예전처럼 같이 한 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김영광도 K리그2 서울 이랜드FC에서 5년간 뛰다가 새 소속팀을 찾던 터였다. 김 감독의 ‘마지막 퍼즐’ 김영광은 지난달 합류했다.
김영광에게 선배 김남일은 ‘신’ 같은 존재였다. 김영광은 2002년 신인으로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했다. 당시 같은 팀 최고스타가 한일 월드컵 4강 주역 김남일이었다. ‘진공청소기’처럼 상대를 쓸어버리는 김남일의 멋진 플레이를 보려고 경기마다 소녀팬이 몰렸다.
김영광은 김 감독을 “롤모델이자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김영광은 “프로 2년 차인 2003년, 성남전에서 처음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날 감독님이 펄펄 날면서 중원을 틀어 막아준 덕분에 무실점했다. 그 경기를 계기로 주전 골키퍼가 됐다. 감독님은 내게 세계 최고 선수”라고 말했다. 김영광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을 8강에 진출시켰고, 이운재(47·은퇴)를 잇는 ‘거미손’으로 승승장구했다. 김영광은 “축구 인생을 열어준 분이 불러주셨기에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국가대표팀에서도 인연이 깊다. 두 차례 월드컵(2006, 10년)에 함께 참가했다. 월드컵을 앞둔 최종 전지훈련에서는 룸메이트로도 지냈다. 김영광은 “늘 편하게 지내도록 많이 챙겨주셨다. 보통 후배는 밖에 나가 전화통화를 하는데, 그냥 방에서 하게 배려해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칭찬이 쑥스러운 듯 “말만 내가 선배였지, 영광이가 상전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친구”라며 웃었다.
2004년까지 전남에서 한솥밥을 먹은 두 사람은 16년 만에 재회했다. 이번에는 두 사람 처지가 좀 다르다. 김남일은 ‘초보’ 감독이다. 팀 운영부터 관리까지 아직 낯설다. 김영광은 현역 시절의 김남일처럼 레전드급 선수다. 김영광은 K리그에서 다섯 번째로 통산 500경기(현재 496경기) 출전을 앞뒀다. 김 감독은 “수비진이 젊은데, 경험 많은 영광이 덕분에 든든하다. 감독 부담을 덜어주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김영광은 “감독님과 전남에서 3년간 같이 뛰면서 늘 상위권이었고, FA컵 준우승도 했다. 예감이 좋다”고 말했다.
김영광은 신인 시절의 등 번호 41번을 다시 달았다. 영광의 과거를 되새기고 되살리기 위해서다. 김영광은 “은혜를 갚을 기회다. 감독님이 원하는 공격 축구를 하려면 먼저 수비가 탄탄해야 한다. 몸을 사리지 않고, 골대에 부딪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공을 막아내겠다”고 다짐했다.
출발은 좋다. 성남은 올 시즌 정규리그 개막전에서 광주FC에 2-0으로 완승했다. 김영광은 두 차례 위기에서 선방을 펼쳐 김 감독에게 데뷔전 승리를 안겼다. 감 감독은 “목표인 상위권에 진입하기 위해선, 이제 내가 영광이에게 잘 부탁해야 하는 건가”라고 농담했다. 이에 김영광은 “지금까지는 내게 ‘큰 형님’이었지만, 올 시즌에는 ‘최고 감독님’으로 만들어 드리겠다”며 김 감독 손을 잡았다. 김 감독은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은 잊었다. 올해부턴 지도자 김남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