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KBO 리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역대 가장 늦게 개막했다. 누구보다 정규시즌 개막을 애타게 손꼽아온 선수는 '현역 최고령 타자'일지 모른다. 더군다나 1990년 야구에 입문해 올해를 끝으로 현역 유니폼을 벗기 때문이다. 바로 LG 박용택(41)이다.
박용택은 2018년 말 LG와 2년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을 맺으면서 '예고 은퇴'를 머릿속에 그렸다. '2020시즌이 끝나면 유니폼을 벗겠다'고 스스로 결정했다. 그는 "계약 당시에 야구를 더 잘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몸의 회복도 더뎠고 무언가 '이제는 때가 왔다'는 느낌이 들더라"며 "2018년 6월 23일 KBO 최다 안타 신기록을 작성한 뒤엔 뭔가 계속 아쉬움이 생겼다. 예전부터 은퇴를 직접 결정하고 싶었었다. 1년만 더 하면 아쉬울 것 같고, 2년이면 나도 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고 돌아봤다.
코로나19 사태로 개막이 늦어졌지만, 박용택은 "마지막 시즌을 늦게 시작해서 더 늦게까지 야구를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코로나19 사태로 개막이 연기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인 이슈였고, 내 개인적으로 어쩌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빨리 정상화되기만 기다렸다"고 덧붙였다.
우리 나이로 마흔둘. 개인적으로 19번째 시즌을 맞는 박용택은 '플레이볼'을 애타게 기다렸고, 그런 만큼 시즌 초반 출발이 산뜻하다. 지난 5일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안타 없이 볼넷 2개로 2득점을 올린 박용택은 다음날(6일)부터 16일 키움전까지 9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부상으로 2002년 데뷔 후 개인 역대 한 시즌 최소인 64경기 출장에 그쳤고, 성적(타율 0.282-1홈런-22타점) 역시 가장 저조했던 아쉬움을 초반부터 떨쳐내고 있다. 개막일이 정해지지 않아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법하나, 베테랑 박용택은 꾸준한 자기 관리로 초반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다.
타점은 10개로 채은성과 함께 팀 내 공동 1위다. 리드오프와 중심타선의 좋은 타격감으로 찬스를 연결하면, 지명타자인 그가 주자를 불러들인다. 득점권 타율은 0.313이다. LG는 최근 6연승 달리는 등 18일까지 공동 2위(7승4패)로 선전하고 있다. 박용택은 "처음에는 정말 안 좋았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시즌 초반 별로 안좋았다"며 "지금 조금씩 찾아가는 중이다. 그래도 여느 해보단 연습경기도 많이 하고, 더 빨리 찾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록의 사나이'로 통하는 박용택은 안타를 1개씩 뽑을 때마다 KBO 개인 통산 최다 안타(2449개) 신기록을 늘려가고 있다. 부문 4위이자 현역 선수로는 2위인 한화 김태균(2164안타)과 격차는 285개다. 19일 현재 통산 2150경기에 출장, 향후 74경기 더 출장하면 정성훈(2223경기)이 갖고 있는 개인 통산 최다 경기 출장 기록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주전(지명타자)으로 여전히 그라운드를 밟는다는 건 그만큼 팀이 그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꾸준한 자기 관리 속에 팀 전력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현역 선수로 간절한 마지막 목표는 '우승'이다. 휘문중-휘문고-고려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는 LG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자리를 굳혔지만, 한 번도 들어 올리지 못한 '우승 트로피'가 마음 한구석에 늘 걸렸다. 팬들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런 대선배를 곁에서 지켜봐 온 후배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박용택 선배에게 우승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한다. 박용택은 "우승을 생각하면서 후배들이 내 생각도 조금씩 해준다는 게 정말 고맙다. 후배들이 각자를 위해서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그게 모이면서 팀이 발전하게 되는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박용택은 어린 후배들과 함께하며 팀이 점차 강해지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그는 "사실 예전에는 팀 분위기 따로 노는 느낌이 있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튀는 선수 없이, 누군가 재미난 얘기를 하면 다 같이 웃는 분위기다"며 반겼다.
현역 마지막 시즌 박용택은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를 전혀 안 받고 싶다. 마지막 해는 열심히 하지만, 스트레스 없이 우리 팀이 재밌게 했으면 좋겠다"는 진심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