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외국인 타자 로베르토 라모스(26)는 뛰어난 기량만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역시 좋다. KBO리그의 선후배 문화를 습득,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에게는 항상 존댓말을 사용한다. 대화 끝에 우리말로 "~다" 혹은 "~요"자를 꼭 붙인다. 선수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실생활에 필요한 한국어를 습득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팀 동료의 FA(프리에이전트) 계약 소식을 듣고선, 자신보다 연봉이 더 높자 "그럼 형님이다"고 말해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할 때도 늘 마지막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동료들에게는 '배꼽 인사'를 자주 한다.
수많은 외국인 선수와 세월을 보낸 프로 16년 차 정근우(38)는 "라모스는 지금껏 봤던 외국인 선수 중 단연 돋보이는 친화력을 지녔다. 팀 내 타일러 윌슨과 케이시 켈리가 굉장히 예의 바르다. 아마 라모스도 윌슨과 켈리 덕에 인사 예절이 좋은 것 같다. 성격도 아주 좋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라모스의 통역은 "라모스가 우리말과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형, 동생에 대한 예의도 배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라모스는 LG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건강한·4번 타자·1루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하마터면 줄무늬 유니폼을 못 입을뻔 했다. 영입 1~2순위는 아니었다. LG는 우타자 거포를 찾았다. 하지만 KBO 리그 출신 타자와 계약이 여의치 않았고, 다른 선수와 이적 협상도 성사되지 않았다. 그래서 LG는 라모스의 영입으로 이번 시즌 10개 구단 외국인 중 가장 마지막인 30번째 계약서(1월 23일)에 사인했다. 라모스의 영입 완료로 KBO의 2020년 외국인 시장은 문을 닫았다.
차명석 LG 단장은 라모스의 출루율에 주목했다.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콜로라도의 16라운드 지명을 받은 라모스는 지난해 콜로라도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A 앨버커키 소속으로 타율 0.309, 30홈런, 105타점을 기록했다. 2018년에도 싱글A와 더블A에서 타율 0.269, 32홈런 77타점을 기록하는 등 장타력이 높았다. 여기에 2018년 출루율 0.368, 지난해 0.400을 기록하는 등 타율보다 1할 가까이 높은 출루율도 돋보인다.
라모스는 1994년생, 꿈과 도전에 포부가 큰 스물여섯이다. 차 단장은 KBO리그 최초 40홈런-40도루 등 대기록을 쌓고 메이저리그로 나간 에릭 테임즈(밀워키)의 사례를 설명했다. KBO리그에서 좋은 커리어를 쌓은 뒤 얼마든지 역수출되는 경우도 있다는 의미였다. 계약금 5만 달러, 연봉은 30만 달러 여기에 인센티브 15만 달러. 총액이 50만 달러(약 6억2000만원)로 영입 금액이 많지 않은 데다 이적료로 높지 않았다.
그런 라모스가 LG의 해묵은 외국인 타자 악몽과 갈증을 날려주고 있다. 라모스는 25일 현재 타율 0.350(60타수 21안타) 7홈런 16타점을 기록 중이다. 홈런과 장타율(0.767)은 리그 1위다. 파워뿐만 아니라 정확성(타율 12위)과 선구안(출루율 0.443, 9위)도 좋다.
LG는 2010년대 데려온 외국인 타자가 부진하거나 부상으로 팀에 녹아들지 못했다. 말썽을 일으켜 시즌 도중에 고국으로 떠난 선수도 있다. 모든 구단이 외국인 타자를 영입한 2014년 이후 조쉬 벨, 브래든 스나이더, 잭 한나한, 제임스 로니, 아도니스 가르시아, 토미 조셉 등이 실패했다. 세 시즌 동안 뛴 루이스 히메네스는 기복이 심했고, 막판에는 부상으로 오랫동안 결장했다. 지난해 교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된 카를로스 페게로는 재계약하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라모스는 이런 얘기에 "야구는 팀 스포츠다. 팀이 이길 때나 패할 때나 한 팀으로 뭉치는 게 중요하다"며 "성과에 대한 만족보다 매 경기 팀 승리에 공헌하고 싶다"고 답했다.
A 구단 투수 코치 출신의 관계자는 "라모스는 약점이 별로 없는 듯하고 힘이 좋다. 한국 무대에서 대단한 기록, 커리어를 쌓을 기량을 갖췄다"고 높게 평가했다.
투수 유형을 가리지 않고 타격한다. 라모스는 우투수(타율 0.289) 사이드암(0.667) 투수에게 강하다. 대개 '좌타자는 좌투수에 약하다'는 인식이 강하나, 라모스는 좌투수에게도 타율 0.308, 2홈런(장타율 0.923)으로 좋은 모습이다.
라모스는 타점 16개 중 절반이 훌쩍 넘는 13개를 홈런으로 뽑았다. 득점권에서의 타율도 0.375로 높은 편이지만, 1~3번 이천웅-김현수-채은성의 페이스가 워낙 좋아 라모스에게 찬스가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꽤 있어서다.
영양가도 만점이다. 라모스는 24일 잠실에서 열린 KT와 경기에서 5-7로 뒤진 9회말 1사 만루에서 끝내기 홈런을 쳤다. 이날 승리로 LG는 11승(6패)째를 거두며 공동 2위에서 단독 2위로 올라섰다. 4연속 우세 시리즈로 분위기를 이어가게 됐다. 특히 LG의 끝내기 만루 홈런 주인공은 구단 역사상 최고 외국인 타자로 남아 있는 로베르토 페타지니 이후 11년 만이다. LG와 라모스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