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진행된 상벌위원회. 심의 대상자인 강정호(33)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를 대신해 법률 대리인인 김선웅 변호사(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가 참석해 강정호가 컴퓨터로 작성한 A4 용지 두 장 분량의 반성문을 스캔해 상벌위원회에 제출했다. 김 변호사는 '강정호는 어디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미국 텍사스에 있다"고 했다.
상벌위원회에 선수가 직접 참석할 필요는 없다. 논란이 가중될 수 있으니 선수도 피하고 싶은 자리다. 그런데 소명하고 사과할 게 있다면 나서야 할 자리이기도 하다. 2018년 12월 이른바 '후배(문우람)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이택근(키움)은 당시 상벌위원회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까지 했다. 그는 "어떻게 때렸든 상대방이 그 부분에 대해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다시 한번 사과한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머리를 숙였다. 폭행이 나온 전후 상황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모두 대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은 상벌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을 명분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말 미국에서 결혼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개인적인 문제가 겹쳤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의지의 문제다. 4월 중순쯤 KBO에 상벌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한 건 강정호다. 그때 이미 준비했다면 상벌위원회 날짜에 맞춰 입국해 관련 내용에 대한 소명과 사과할 기회는 충분했다.
상벌위원회가 끝나자마자 에이전트를 통해 밝힌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이제서야 바보처럼 느끼고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릴 자격이 없는 걸 알지만, 야구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는 구구절절한 사과문처럼 야구가 정말 간절하고 복귀를 원했다면 A4 용지나 이메일이 아닌 직접 자리에 나설 필요가 있었다. 상벌위원회가 끝난 뒤 취재진의 질문 공세를 혼자서 받아낸 김선웅 변호사는 '강정호의 복귀 계획'을 비롯한 민감한 질문에 대해선 함구했다. 에이전트와 선수가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는데 현장엔 질문에 답을 할 당사자가 없었다.
사과에는 아주 간단한 원칙이 있다. 바로 C.A.T다. 내용(Content)을 담아 진정성이 느껴지는 태도(Attitude)로 적절한 시기(Timing)에 해야 한다. 두 차례(2009년·2011년) 음주운전 적발 뒤 구단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강정호는 이미 사과의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 더욱더 진정성 있는 내용과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미국에서 컴퓨터로 작성한 반성문과 에이전트를 통해 밝힌 이메일 사과문. 팬들의 여론이 들끓는 이유를 선수 본인만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