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닛산이 16년 만에 한국시장에서 철수한다. 지난달 28일 서울 성동구 닛산서비스센터 건물 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기업들이 한국 사업을 접고 떠나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일본 불매운동'의 여파로 매출액이 많이 감소한 여파다. 올 2월말 시작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불황까지 겹치자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닛산, 불매 1년 만에 "한국서 철수"
1일 재계에 따르면 일본 닛산 자동차는 지난 2005년 3월 한국 시장에 진출한 지 15년 만에 철수한다.
닛산은 지난 2005년 3월 고급 자동차 브랜드 인피니티를 앞세워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닛산 본진이 상륙한 것은 2008년 10월이다. 인피니티 브랜드 차량과 중형 세단 알티마 등이 주력이었다. 2010년 닛산과 인피니티를 합쳐 6600대였던 판매량은 2017년 9000대 수준으로 늘었다.
한국닛산이 홈페이지에 올린 한국 시장 철수 공지. 한국닛산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지난해부터 한국과 일본의 무역분쟁으로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구조조정 대상이 된 것이다. 실제로 닛산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웹사이트인 노노재팬의 ‘일본제품 불매운동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불매운동의 여파는 막강했다. 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1~4월) 닛산은 813대, 인피니티는 159대가 팔렸는데 각각 전년 동기대비 각각 41%, 79% 줄어든 수치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렉서스가 꾸준한 판매량을 기록하는 토요타나 오토바이 등 자동차 외 다른 사업부를 가진 혼다에 비교해 닛산은 상대적으로 불매운동에 견딜 체력이 약하다"고 말했다.
패션도 철수…맥주는 인력감축
패션업계는 더욱 심각하다. 지유(GU)와 데상트 영애슬릿이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GU는 유니클로의 자매 브랜드다. 국내 오프라인 매장 3곳을 8월까지만 운영하겠다는 뜻을 지난달 21일 발표했다.
지난달 27일엔 데상트의 어린이용 브랜드 데상트 영애슬릿도 47개 매장을 닫기로 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특히 어린 세대에게서 일본 불매운동으로 브랜드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고 전했다.
올림푸스도 카메라 사업을 이달 말까지 종료하기로 했다. 직영점과 온라인 쇼핑몰도 같은 날 폐점한다. 다만 의료사업과 과학 솔루션 사업 부문은 국내 시장에 유지하기로 했다.
올림푸스 관계자는 "카메라 사업의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지속해서 노력해 왔지만 기대하는 성과 달성이 어려웠다"며 철수 결정을 내린 이유를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일본 기업들의 한국 철수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산 소비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각인되면서 대체재를 알게 된 국민의 소비 행태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인기가 높았던 일본산 맥주도 힘을 못 쓴지 오래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일본산 맥주 수입액은 전년동기 대비 87.8% 감소한 63만 달러(약 7억7300만원)로 집계됐다. 2018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일본 맥주 업계에서 가장 큰 해외시장이었으나 지난해 7월 이후 급감했다. 불매운동 전만 해도 편의점 맥주 순위에서 1~2위를 다퉜던 일본 맥주 아사히를 판매하는 롯데아사히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반 토막 나면서 인력감축을 시행했다.
닌텐도는 품귀…선택적 불매운동 논란
다만 불매운동의 여파를 거의 받지 않은 브랜드도 있다.
일본 ABC마트가 99.96%의 지분을 소유한 신발 편집숍 ABC마트 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6.7% 늘어난 5459억원으로,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직접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유니클로나 무인양품과 달리 ABC마트는 나이키 등 타 브랜드의 신발을 매입해 판매하다 보니 일본 브랜드라는 인식이 적어 불매운동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콘솔 게임기인 닌텐도 스위치가 ‘모아봐요 동물의 숲’ 게임 때문에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코로나19로 찾아오는 우울감인 ‘코로나 블루’가 퍼지는 가운데 힐링 게임으로 불리는 해당 게임에 소비자들이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편의에 따라 특정 브랜드만 거부하는 '선택적 불매운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불매운동 실천은 개인의 자유지만, 필요에 따라 특정 브랜드만 불매하거나 구매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닌텐도 게임기를 사려는 사람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두고 일본 우익과 언론이 얼마나 비웃겠나"라며 "개인의 선택은 존중하지만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도록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