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열린 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여성 감독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5명의 감독상 후보 가운데 2명이 여성, 신인감독상 후보 가운데서는 무려 3명이 여성이었다. 지난 한 해 가장 훌륭한 작품을 선보인 연출가의 절반은 여성. 이날 감독상과 신인감독상 수상자는 '벌새' 김보라 감독과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 모두 여성이었다.
예술상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남성 중심일 수밖에 없는 촬영과 무술 등 쟁쟁한 분야의 후보들을 제치고 유일한 여성 후보였던 '남산의 부장들(우민호 감독)' 분장 김서희 실장이 예술상의 주인공으로 호명됐다. 그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분장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남성에 가려져 있던 여성 영화인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 같은 사실을 단순히 시상식의 수상 결과로 볼 수는 없다. 특히 신인감독상 후보 과반수가 여성이다. 미래의 한국영화를 책임질 연출가 가운데 여성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남성이 주류를 이루던 영화계의 세대교체를 예고한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김서희 분장 실장의 활약 또한 뜻깊다.
비슷한 현상은 지난달 개막한 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있었다. 선정된 총 11편의 한국영화 경쟁 본선 진출작 중 절반이 넘는 6편이 여성 감독의 작품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고사 위기에 빠진 극장가를 살리기 위해 나선 이도 여성 감독이다. 영화 '침입자'를 내놓은 전 베스트셀러 작가, 현 신인감독손원평은 섬세한 스토리텔링으로 스릴러를 완성했다. 개봉 첫 주말 3일 간 23만 8444명의 관객을 동원, 7일까지 누적 관객 수 28만 8853명을 기록했다. '침입자'의 선전과 함께 극장 관객은 직전 주 관객 수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충무로에서 여성 배우의 설 자리가 없다는 오랫동안 여러 차례 제기된 공식과 같았다. 소모적인 역할이나 남성 배우를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 감독 또한 영화 만들기가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거친 영화판에서 살아남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의 계보가 꾸준히 이어지기 힘들었다. 남성적 서사로 가득한 영화만이 스크린에 걸릴 때도 있었다. 숱한 어려움을 딛고 여성 영화인과 여성 영화는 이제 충무로의 주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초미의 관심사(남연우 감독)'와 '결백(박상현 감독)' 등 남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나 여성 서사를 담은 영화들도 활발히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에 대해 문석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절반이 넘는 것은 미투 운동 이후 한국 사회와 영화계가 서서히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다"라며 "남자 감독의 영화 중에도 여성이 주인공이거나 여성적 담론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 두드러지게 많다는 사실 또한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