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 A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대뜸 이렇게 답했다. 하루 앞선 지난 2일 매물로 올라왔던 2억7000만원 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는지 묻자 나온 반응이었다. "이런 물건은 바로 사야 해요. 어제 사신 분도 '물건 볼 필요 없다, 전세 빵빵하게 줄 것'이라면서 바로 1000만원을 쏘시더라고요." 지어진 지 25년이 넘은 구축 전용 46.57㎡(약 14.08평)인 이 아파트는 올해 초만 해도 시세가 2억원 남짓이었다. 그러나 불과 몇 개월 만에 수천만 원이 뛰었다. 그나마도 시장에 나온 지 단 하루 만에 거래가 완료됐다.
6·17 대책 … '씨 마른' 서울 3억원 아파트
비단 이 집만의 일은 아니다. 이 아파트 단지는 정부의 6·17 부동산 대책 이후 대부분의 매물을 소화했다. 발표 당일 호가 2억8000만원 짜리 물건이 팔렸고, 이후 이틀에 한 번꼴로 계약이 성사됐다. 현재는 3억원이 약간 넘는 다소 넓은 평수의 몇몇 매물을 빼고는 팔겠다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 지역 B 부동산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정부 발표 이후 지방에서도 사겠다고 올라온다. 반면 팔겠다는 사람은 마음을 바꾸거나 가격을 올린다. 한 마디로 나오면 팔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6·17 부동산 대책은 3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에 한해 전세대출을 규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실거주하지 않는 3억원 초과 아파트를 전세대출을 활용해 사는 것이 제한된다. 따라서 3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사고 다른 집에서 전세를 얻어서 살면 전세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또 전세 대출을 받은 후라도 3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사면 대출이 즉시 회수된다. 연이은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이 오르는 이유인 갭투자를 막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3억원 미만 아파트 인기가 치솟았다. 현장에서 "서울 3억 미만 아파트 씨가 마를 지경"이라는 푸념이 나온 배경이다.
가뜩이나 서울에서 3억원 미만 아파트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지난달 12일 기준 부동산 114의 시세 조사 대상 서울 25개 구의 아파트 124만9389채 가운데 3억원 이하는 3.48%(4만3501채)에 불과했다. 특히 강남·강동·광진·동대문·동작·마포·성동·송파·영등포·용산 등 10개 구에서는 3억원 이하 아파트 비율이 0%대였다.
3억원은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에도 미치지 못한다.
KB국민은행 리브온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1분위(하위 20%)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4억329만원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8년 말부터 집계된 해당 통계에서 이 값이 4억원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서울에서는 상위 20%인 5분위 아파트 평균 가격을 제외하곤 일제히 꾸준히 상승을 기록하고 있다. 앞서 정부가 지난해 말 고가주택을 대상으로 대출을 줄이고 세금을 늘리는 12·16 대책을 시행한 후 고가주택은 힘을 못 쓰고 있다. 반면, 그 아래 80% 구간에서는 아파트값이 내내 오르고 있다. 전세 대출 규제까지 얽혀들면서 3억원 이하 아파트는 종적을 감춰가고 있다.
도봉구∙중랑구에 남은 3억 아파트
물론 3억원 미만 아파트가 서울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 3억원 미만 아파트가 남아있는 자치구가 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도봉(23.11%), 중랑(10.82%), 금천(10.13%)구가 아직 일부 3억원 미만 아파트 매물을 갖고 있다. 서울에서 3억원 이하 아파트 비중이 가장 큰 자치구도 이들 세 곳뿐이다.
본지 취재 결과, 이들 자치구에 매물로 나온 아파트는 상당수가 3억원 선에 정확히 걸려있는 경우가 많았다.
중랑구 신내동의 경원 아파트는 5층 규모 2동짜리 아파트다. 지어진 지 30년 된 구축 전용 59.4㎡(17.96평)의 호가는 2억7000만원에서 2억9000만원 사이였다. 역까지 13분 거리로 총 40세대인데 평당 가격이 1200만원 수준이다. 호가만 따졌을 때 올해 1월과 비교하면 전부 4000만원에서 5000만원씩 가격이 올랐다. "이마저도 호가일 뿐 실제 거래 시 얼마가 더 올라갈지 모른다. 3억원 밑에서는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라는 것이 현장 부동산 중개사무소의 전언이다.
중랑구 면목동의 면목한신 아파트도 3억원 미만 매물로 관심을 받고 있다. 15층 1360세대가량이 거주하는 면목한신 아파트는 전용 27㎡(약 8.16평)~35.3㎡(약 10.67평)가 2억2000만원에서 3억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2억2000만원 대 매물은 대부분 6월 중 소진됐다. 현재는 2억7000만원 이상을 호가로 부르는 물건만 2~3건가량 남아있다. 아직 팔리지 않은 매물은 월세나 전세 등 조건이 걸린 경우가 더러 있었다.
면목한신 아파트의 지난 1월 실거래가는 2억원에서 2억3500만원이었다. 신내동 경원 아파트처럼 6개월 새 수천만원이 올랐다. 하지만 집주인들은 호가를 계속 올리거나 갖고 있던 매물을 거둬들이는 분위기다. 인근 C 부동산 중개사무소는 면목한신 아파트를 가르켜 "귀한 매물이다. 지금은 잘 볼 수도 없는 물건들"이라고 소개했다.
금천구는 1억5000만원에서 3억원 사이 아파트가 매물로 상당수 나와 있다. 하지만 이중 상당수가 1동짜리 나 홀로 아파트이거나 도시형 생활주택이었다. 구축일지라도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은 한국 상황을 비춰볼 때 상대적으로 평가가 박한 곳들이다.
중형단지 아파트 매물이 없진 않다. 금천구 시흥5동의 건영2차 아파트 전용 41.34㎡(약 12.05평)가 3억에 매물로 올라와 있다. 총 619세대이고 지어진 지 30년가량 됐다. 3층에 해당하는 이 물건의 호가는 3억원이다. 지난 1월 같은 평형의 실거래가는 2억5500만원이었다.
도봉구 쌍문동 경남아파트 전용면적 44㎡은 지난 4월 2억500만원에 실거래됐지만, 현재 공인중개사무소에 나와 있는 매물의 호가는 3000만~5000만원까지 올랐다.
'싸다고 무조건 매수'는 지양해야
문제는 이마저도 갈수록 비싸진다는 점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6월 넷째 주 서울 도봉구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0.05%로 전주와 함께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금천구도 0.07% 올라 13주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고, 중랑구 역시 0.04% 올랐다. "일단 잡고 보자. 저금리 시대에 돈 갈 곳이 없다", "지금 아니면 영원히 집 장만 못 한다"는 마음에 3억원 미만 아파트 수요가 폭발한 탓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3억 이하 아파트 매수에 앞서 신중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인석 착한부동산투자연구소 대표는 "해당 지역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물 가격이 싼 곳은 이유가 있다. '돈 되는 땅'은 지금 가격이 얼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더 오를 땅"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리딩업체 관계자는 "도봉구와 중랑·금천구는 서울 도심 업무지구 등과 물리적 거리가 다소 멀어 그동안 아파트값이 서울 평균만큼 오르지 않았던 곳"이라면서 "실수요자라면 3억원이라는 가격 조건 말고도 호재나 교통 등 다른 조건들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 정부가 21차례 부동산 정책을 내놨다. 앞으로 더 나올 수 있고, 정권이 바뀐 뒤에는 어떤 대책이 다시 나올지 모르는 일"이라고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