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New-tro). 새롭다는 의미의 뉴(New)와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다. 과거의 정서가 현대의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소비되는 트렌드다. 일종의 문화 융화다.
이강철(54) KT 감독은 '뉴트로 야구'를 구현하는 지도자다.
이 감독은 개인 통산 152승을 거두며 '해태 왕조'를 이끌었던 잠수함 투수였다. 경험과 가치관이 1990년대에 기인할 수밖에 없는 옛날 야구인이다.
이 감독은 2005년 선수에서 은퇴한 뒤 코치로서 선수들을 도왔다. 여러 감독을 보좌하며 견문을 넓혔다. 이 과정에서 소위 '요즘' 정서에 맞는 지도 철학이 정립됐다.
이 감독은 지난 11일 수원 삼성전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웠다. KT가 10-7로 승리하며 감독 통산 100승을 달성한 것이다. 선동열, 김시진, 한용덕 전 감독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투수로서 100승, 감독으로서 100승을 동시에 달성한 야구인이 됐다.
100승 달성만큼 의미 있는 기록이 그의 승률이다. KT 감독으로서 202경기에서 100승·2무·100패를 기록했다. 딱 5할이다. 2018시즌까지 통산 승률 0.375(214승·6무·356패)에 그쳤던 '만년 최하위' KT를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는 팀으로 만들었다. 더뎠던 유망주 성장에 가속이 붙었고,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가 KT 사령탑으로 부임한 2018년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들이 지도자 경쟁에서 밀려나던 시점이다. 스타 출신 이 감독은 보란 듯 다채로운 리더십을 보여줬다.
뚝심과 결단력이 특히 돋보였다. 2019시즌에는 선발투수 2명이 이탈한 상황에서 미완의 대기였던 배제성, 주목받지 않던 김민수를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당시 이 감독은 "마무리 캠프와 스프링캠프에서 눈여겨본 투수들이다. 장래의 선발감으로 보고 있었다. 마침 기존 선발진에 공백이 생겨 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었다"고 했다. 두 투수는 시즌 끝까지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했고, 올 시즌도 선발진의 한 축을 맡고 있다.
2020시즌에는 스프링캠프를 시작하며 큰 변화를 예고했다. 9번 타자였던 심우준을 1번 타자로 내세운 것이다. 타격 성장세에 있는 그가 공격을 이끌면, 기동력이 강화돼 득점력을 높일 수 있다는 플랜이었다. 심우준이 개막 뒤 타격 부진을 겪을 때도 "20경기 정도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결단을 밀고 나간 동시에 선수의 심리도 배려했다.
이 감독은 소위 '요즘' 정서를 외면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독단이나 고집이 없다. 심우준은 KT의 시즌 32번째 경기부터 1번 타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코치들과 선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변화를 준 결과였다.
2019시즌도 그랬다. 공격력 강화를 위해 이 감독은 황재균이나 오태곤을 유격수로 내세우는 변화를 시도했다. 수비력이 약해지자 이숭용 KT 단장 등 내부자들이 이 감독에게 직언했다. 이 감독은 자신의 오판을 빠르게 인정했다.
이 감독은 외국인 투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 윌리엄 쿠에바스와의 에피소드를 가끔 전한다. 코치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이 아니라, 직접 나눈 대화다. 강판 시점, 등판 간격, 타자 상대 등 외국인 투수가 전하는 생각들을 생생하게 듣는다. 가벼운 농담을 나누기도 하고, 사안에 따라 자리를 따로 마련해 진지하게 대화하기도 한다. 지난 시즌은 쿠에바스의 공배합, 올 시즌은 데스파이네의 지나친 완급 조절을 주제로 얘기했다.
베테랑 선수들과의 소통 방식은 '뉴트로 리더십'의 대표 사례다. 과거 지도자들도 고참급 선수 관리에 신경을 썼다. 이 감독의 소통 방식은 더 혁신적이다. 심우준의 타선 변화 등 코칭스태프의 권한을 내려놨다. 이 문제를 주장 유한준, 부주장 박경수와 상의해 수정했다. 베테랑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최종 결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충분한 커리어를 쌓은 선수들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주전 3루수 황재균이 이 감독에게 면담을 요청해 "(작전을 낼 상황에서는) 주저 없이 활용해달라"고 했다. 이후 이 감독은 그에게 희생번트 등의 작전을 지시했다. "황재균이 헌신적인 팀플레이를 했다"는 칭찬도 곁들였다.
내부 구성원들에게 부드럽지만 외부와 맞설 때는 강단도 있다. 지난해 7월 7일 한화전에서 비디오판독 결과에 항의하다가 이 감독은 퇴장을 당했다.
홈 커버를 들어간 1루수가 주자 송민섭의 주루를 방해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과정에서 심판을 향해 '배치기'까지 하며 강도 높은 어필을 했다. 퇴장을 감수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였다. 이는 해태 왕조를 이끌던 김응용 전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마치 오마주처럼 보였다.
이 감독은 히어로즈와 두산에서 수석 코치를 지냈다. 후배 감독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당시에는 그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았다. '감독' 이강철이 되자 그의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선수 시절 투구폼처럼 부드럽기도 하고, 그의 이름처럼 강철 같기도 하다. 이강철 감독과 함께 KT가 단단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