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있는 유종의 미,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다. 영화 '기생충(봉준호 감독)'을 통해 기적의 1년을 보낸 배우 박명훈(46)이 제5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신인연기상 트로피를 거머쥐며 신기루 같은 나날들의 마침표를 완벽하게 찍었다. "내일 모레 50을 바라보는 신인은 많지 않죠? 하하" 올해 조연상과 신인연기상 후보에 동시 노미네이트 됐지만 내심 받고 싶었던 상은 역시 '생애 단 한 번'이라는 조건이 붙는 신인연기상이었다. "'기생충'의 일원이 됐다는 자체가 저에겐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였죠. 봉준호 감독님께 가장 감사해요."
오로지 연기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던 인생이다. "시작이 연기라서 그런가? 뭔가 회사원처럼 이직의 개념을 생각할 수도 없는 직업이라 다른 일에는 한 번도 관심 갖지 않았어요." 오랜시간 연극무대에서 쌓은 내공은 독립영화로 이어졌고, 그 결과물이 봉준호 감독 눈에 띄었다. 현 충무로를 이끄는 대부분의 배우들은 '무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이 있으니 잘 따라가면 될 것 같았죠"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타고난 긍정 마인드가 보다 넓은 범위의 대중에게 배우 박명훈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밑거름이 됐다.
눈에 띄는 변화는 단연 스케줄, 그리고 필모그래피다. 박명훈은 1년 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보이스' '경관의 피' '휴가' 등 영화 촬영을 줄줄이 마쳤고 '리미트' '비광'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아주 잠깐 등장하는 특별출연도 있고, 색다른 캐릭터도 있어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할 수 있는건 연기 뿐이니 열심히 많이 달려야죠."
행복한 하루 하루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작심한 최근 관심사는 기승전 '운동'. "사실 운동보다 술을 좀 줄여야 할 것 같은데…."라고 껄껄 웃으면서도 늦은 밤 대학로 술자리로 향한 박명훈이다. "여전히 많은 동료들이 대학로에서 활동하고 있고, 몸이 기억하는지 저도 그 자리, 그 분위기가 아직은 제일 편하네요." 인생의 풍파를 겪을만큼 겪은 후 맞이하게 된 제2의 인생은 큰 선물이 되어줬을 뿐 인간 박명훈을 흔들리게 만들지는 않았다. 작품의 후광이 아닌, 박명훈이라는 이름으로 구축해 나갈 행보에 신뢰가 더해지는 이유다.
※취중토크②에서 이어집니다.
-이젠 대학로의 희망이 됐어요. "(진)선규가 '기생충' 보고 문자를 했어요. '형도 대학로의 후배들이 형을 보면서 달려갈 수 있는 발판이 돼 줬다'고 하더라고요. 스스로는 아직도 어리둥절해요. 저보다 선배들이 먼저 길을 열어주셨고, 열심히 따라 걸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감사할 뿐이에요."
-'기생충' 뿐만 아니라 최근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도 한류 붐 주역이 됐죠.
"전 세계에 분단된 나라가 이곳뿐이잖아요. 해외 시청자들에겐 엄청 흥미로운 지점인가 봐요. 예전에 동독, 서독 보는 느낌이 아닐까 해요. 북한 내용도 있고, 한국 내용도 있고. 세계 사람들에겐 흥미롭게 다가가지 않았을까요. 넷플릭스로 풀리면서 진짜 대박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고백하자면, '사랑의 불시착' 마지막 회를 보고 오열했어요.
"마지막 회를 종방연에서 배우들, 스태프들과 같이 봤어요. 즐겁게 시청한 기억이 있네요. 사실 너무 판타지라 호감만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북한이 저렇게 사느냐' 지적하는 분들도 있고. 근데 (현)빈이가 너무 잘생겼잖아요. 드라마 장르 자체가 '판타지 멜로'고요. 재미있게 즐겨주세요."
-두 작품으로 한류의 중심에 선 소감은요.
"한류의 중심에는 현빈이 서 있죠. 제가 아니라요.(웃음) '기생충'은 서로가 너무 자랑스럽고, '기생충'이야말로 국위선양했다고 생각해요. 정말 좋아요."
-쉬는 시간엔 주로 뭘 하나요.
"요즘 운동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근데 한 번 술 먹고 운동한 게 다 날아가요. 하하하. 그리고 제안 들어온 대본 열심히 보고 있고요. 이렇게 운동한다는 걸 말하고 다녀야 저도 게으름 안 피우고 책임감 있게 운동 다닐 것 같아요. 진짜 너무 힘들어요. 어우, 진짜 힘들어요. 운동을 중독이 되게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밥 먹듯이 습관처럼 해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겠죠. 휴."
-몸짱을 목표로 하는 건가요. "다이어트가 우선이에요. 제가 이 나이에 몸짱이 되고 싶겠습니까.(웃음) 몸짱이 된다 해도 아무도 안 좋아해 주실 걸요. 일단 체력이 붙는 게 목표고요. 체력이 붙으면 또 몸만들기에 욕심이 날지도 모르겠어요. '기생충' 때 10kg 정도 뺀 거였어요. 평균적으로는 지금 같은 몸인데, 작품 할 때만 그 정도 체중을 감량해요. 작품 끝나고 두세달 있으면 또 그 전 몸무게로 돌아가더라고요. 대여섯번 그걸 반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안 되려면 아예 운동을 생활화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건강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요. 물론, 이 모든 게 술만 끊으면 더 수월할 텐데. 이쪽 분들이 워낙 술을 좋아하잖아요. 술자리에서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프로젝트들도 있고요. 핑계이긴 한데, 술이 생활의 연장이 돼 버렸어요. 공연할 때부터 종일 연습하고 마지막에 맥주 한잔하는 게 생활화됐어요. 20년 넘게 늘 해오던 패턴이에요. 뭐 직장인들 회식하는 거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요."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죠.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도 클 것 같아요. "뭔가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그런 마음들이 있어요. 고마운건 당연하고 그 이상의 마음들이요. 고맙고 고마워요."
-아들은 아빠의 직업을 알고 있나요.
" TV에 나오면 '아빠다' 하겠는데, 얘가 아직 영화를 볼 나이는 아니라서요. 하하. 아빠가 영화배우란 건 아는데, 그냥 알고만 있는 것 같아요. (이)선균이가 아들이 둘인데, 선균이 아들들이 초등학교 다녀요. 걔네들도 엄마, 아빠가 배우인 걸 안 지 얼마 안 됐대요. 길을 가다 보면 사람들이 알아보니까, 그래서 알게 됐대요. 우리 아들은 아직 일곱살이라 알 수가 없어요."
-상냥한 아빠인가요.
"상냥한 아빠가 되려고 하죠. 아이가 워낙 어려서 화를 내기도 그렇잖아요. 지금은 자기가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를 나인데, 화를 내봤자.(웃음) 저희는 출퇴근하는 직업이 아니니까요. 다음 작품 들어가기 전에는 집에 계속 있을 수 있으니, 그때는 가족과 함께해요. 가정적인 아빠라고 하기엔, 술 먹으러 너무 나가네요. 낮에는 함께할 수 있는 아빠라고 해둘게요."
-배우 말고 다른 직업은 생각해보지 않았나요.
"다른 직업은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요. 군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하지 않고 대학로 극단 생활을 했어요. 인생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정말 젊은 나이였잖아요. 사회 초년생이 된 건데, 사회 초년생을 연기로 시작해버리니 다른 것에 신경 쓸 수 없었어요. 돈 때문에 직장에 다녔으면 이직을 했을 수도 있죠. 근데 연기는 연기 외엔 다른 걸 할 수가 없어요. 알바는 많이 했죠. 주유소에서 일하든 아이들을 가르치든, 모든 배우가 알바는 다 했어요. 알바하면서 자기 연기를 하는 거예요. 물론, 하다가 그만둔 분들이 더 많죠. 남아있는 사람들이 소수고요."
-연극을 할 때는 '공연만 하겠다'는 생각을 한 건가요.
"그런 건 아니었어요. '공연을 하다 보면 다른 캐스팅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실제로 캐스팅이 된 적도 있었고요. 근데 제 세대엔 이전보다 더 많은 공연이 만들어졌고, 그 이상의 배우들이 활동을 했거든요. 그때 독립영화로 눈길을 돌렸는데, 제 인생에서 '잘했다' 가장 칭찬해 주고 싶은 순간이에요.(웃음)"
-'기회'에 대한 고민이 많았겠어요.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죠. 제자리에 안주할 수는 없고, 잘 안 풀린다 싶으면 사람인지라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도 '꾸준히 하면 될 것이다'는 믿음이 늘 있었어요. 제가 생각보다 긍정 마인드가 강해서. 하하. '천운'이라고 하죠. 하늘만이 아는 기회를 위해 할 수 있는건 노력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신인상을 받은 배우에게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박명훈의 50대는 어떨까요. "으하하하. 심지어 얼마 남지도 않았네요. 세상에. 음…. 내일 모레 50대에 입성하는 저 박명훈은….(웃음) 식상하지만 아마도 계속 연기하는 배우로 살고 있지 않을까요. 그 사이 조금 더 필모그래피가 쌓였을 것이고, 조금 더 다양한 캐릭터를 만났을테고. 변하지 않되, 배우로서 발전하고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의 목표이자 바람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