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7∙10 부동산 대책'이 예상 밖 부작용을 내고 있다. 법인의 부동산 투기 수요를 막고 문어발식 '갭투자'를 위축시키는 데 중장기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겠지만, 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셋값은 상승하고 민심도 엇갈리고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 마저 7∙10 부동산 대책 이후 완만한 상승세를 기록하면서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도 불안하다.
확 오른 전셋값∙늘어난 반전세
"그 물건은 벌써 나갔어요. 요즘 전세 물건 자체가 없어요."
지난 17일 서울 노원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의 푸념이다. 노원구 역세 주변에 위치한 20평대 A 아파트 전세에 관해 물어보자 되돌아온 답이었다. 이 중개업자는 "20평대 3억원은 지금 12월 입주할 수 있는 물건 하나만 남아있다. 30평대도 4억원 이상 달라고 하는데 이마저도 물건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불과 4~5개월 전만 해도 이 동네 20평대 아파트 전세 시세는 2억5000만원이었다. 리모델링과 수리 등을 해 깔끔한 20평 아파트 전세가 "비싸 봐야 2억7000만원"선이었다는 전언이다. 이 중개업자는 "기존 세입자가 집을 사기에는 너무 비싸고, 정부 규제에 따른 변동성이 큰 상황이라 그대로 주저앉는 분위기다. 반면 전세를 찾는 수요는 그대로"라며 "결국 아파트 전셋값만 올라가는 형국이다. 지금은 3억짜리 전세가 몇 달 뒤에는 3억5000만원까지도 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비단 노원구만의 사정은 아니다. 강동구 고덕그라시움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말 7억9000만원에 전세로 거래됐으나, 현재 호가가 10억원에 달한다. 마포구 아현동 래미안푸르지오 2단지 전용 114㎡ 저층(3층) 전세가 지난 13일 12억원에 계약됐다.
새 아파트가 많은 고덕이 속한 강동구는 0.30% 상승해 서울에서 가장 많이 올랐다. 이어 송파구 0.26%, 강남구 0.24%, 서초구 0.21%, 마포구 0.19%, 성동구 0.15%, 서대문구 0.14%, 성북구 0.12% 등도 전셋값 강세가 이어졌다.
전셋값 상승과 다름없는 반전세 비중도 높아지는 추세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의 6월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총 151건이었다. 이 중 월세가 끼어있는 거래(준전세·준월세)는 56건(37%)에 달했다.
전셋값 상승 원인은… 정부 규제?
업계는 전세난의 이유를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서 찾고 있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 대책이 전셋값 급등과 물량 부족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집주인들은 7·10 대책으로 많이 늘어난 보유세 부담까지 전∙월세를 올리고 있다. 전셋값을 올리거나 반전세 등으로 돌려서 세금을 충당하는 등 '버티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스터디' 등 부동산 관련 온라인 카페에는 "정부가 다주택자 세 부담을 올렸다. 전세나 월세를 올려 버티겠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카페에서 자신을 다주택자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당장에 전셋값 폭등할 것이다. 다주택자 흔히 말하는 저 포함 투기꾼 지인은 모두 버티기 모드로 들어갔다. 증여 취득세 개정 전 이번 주에 액션 다 들어갔다. 시장에 매물도, 매수자도 실종하고 전·월세는 폭등한다"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투자자 입장에서 더는 (신규 매수) 진입은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팔 것 같나? 강남 고가 2개 이상 가진 분들끼리 자녀 명의로 교차 증여하며 정리될 것이다. 중저가 구간은 종부세가 심하지 않아 버티기 구간일 것이다. 전세는 급상승해 매매전환 수요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월세 신고제,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을 담은 '임대차보호 3법'과 재건축 2년 거주 등 규제 강화도 원인으로 꼽힌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6일 "7월 임시국회에서 부동산세법과 임대차 3법을 반드시 처리하겠다. 임대차 3법은 기존 계약에도 적용하겠다"며 소급적용 의지를 보였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저금리와 공급 부족이 맞물린 상황에서 집주인의 보유세 부담은 증가하고 있다"며 "전·월세3법이 시행돼 소급적용이 된다면 일부에서는 이면계약으로 월세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평했다.
엇갈린 민심…전문가 "급등세 집값 진정 가능성 높아"
민심도 갈렸다.
정부의 7∙10 부동산 대책을 옹호하는 입장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나친 과세와 22번에 걸친 부동산 대책 발표, 폭등한 집값을 탓하는 여론도 상당하다.
급기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 부동산 온라인 카페 회원들이 '실검(실시간 검색어) 챌린지' 운동까지 벌이기 시작했다. 최근 온라인에서 '조세저항 국민운동', '못 살겠다 세금 폭탄', '김현미 장관 거짓말' '6·17위헌서민피눈물' 등의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 상단에 오르내렸다.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부의 부동산 추가 대책을 지적하는 '조세저항 국민운동'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인은 "왜 동의받지 않는 조세를 횡령해 가느냐. 개인 재산에는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썼다. 이 청원은 글이 올라온 지 이틀 만에 4만여명이 청원 동의를 눌렀다. 이 밖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재고해 달라는 글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 사이 집값은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7월 둘째 주(13일 기준) 서울의 주간 아파트값이 0.09%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번 주까지 6주 연속 상승이다. 지난주(0.11%)보다 오름폭은 다소 둔화했으나 오름세는 그대로다. 다른 기관의 분석도 비슷하다. KB부동산 리브온은 지난 13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전주 대비 0.63%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8년 9월 셋째주(0.69%) 이후 91주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다만, KB측은 매수우위지수는 상승세 꺾이면서 시장 안정화 될 기미가 보인다고 밝혔다.
전문가 중에서는 현재는 급등세를 기록 중인 집값이 장기적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균표 KB국민은행 부동산정보팀 차장은 "그동안 저가나 급매물 문의가 많았다. 그러나 대책이 진행되고 매수 문의가 차츰 줄어들면서 과거처럼 시장이 진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