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코로나19가 하늘길을 막아섰고 휴가 시즌은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너도나도 국내 휴양지를 찾는다. 천혜의 자연경관이 펼쳐지는 제주도나 푸른 바다가 맞이하는 강원도가 휴가지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서해안에도 동남아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휴가지가 있다. 바로 태안이다.
해수욕하기 좋은 태안
서울에서 차로 3시간을 달리면 태안군에 도착한다. 서해안 고속도로 길이 쭉 뻗어 있지만, 차가 밀리지 않으면 제법 가기 좋은 관광지다.
특히 해수욕하러 가는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 태안군 관광지도에 따르면 태안반도와 안면도 서쪽을 따라 모두 38곳의 해수욕장이 늘어서 있는데,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해수욕장도 꽤 있다.
흰 백사장이 동해안에 비하면 약소하지만, 서해안의 갯벌과 맞물려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곳들이다. 대표적인 곳이 ‘만리포 해수욕장’과 ‘꽃지 해수욕장’이다.
지난 16일 정오가 넘어 도착한 만리포 해수욕장에서는 주차장에서 일단 열 체크 후 손목 밴드를 채우는 방역부터 해야 했다.
방역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는 “손목 밴드를 착용해야만 해수욕장이나 근처 음식점 등을 이용할 때 다시 열 체크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그제서야 서해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모래 위 백사장에 빨갛고 알록달록한 파라솔들이 꽂혀있고 밀물이 들어와 푸른 빛을 띠는 바다가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이탈리아 해변에 온 듯하다.
이날 만리포 해수욕장은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조금 있을 뿐 붐비지 않았다. 만리포 해수욕장은 개장 직후에는 1만여 명의 피서객이 몰리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무색한 모습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때문인지 모래사장에 꽂힌 파라솔들의 간격도 꽤 널찍했다.
태안군 권문선 문화관광해설사는 “만리포 해수욕장은 6월 1일에 태안 해수욕장 중 가장 먼저 개장했고, 다른 해수욕장들은 한 달 뒤에 열었다”고 설명했다.
해수욕과 더불어 동남아 휴양지 특유의 리조트까지 즐기고 싶다면 꽃지 해수욕장이 제격이다.
태안군 안면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으로, 이미 유명한 곳이지만 최근 호반 호텔앤리조트의 ‘아일랜드 리솜’이 리뉴얼해 문을 열며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꽃지 해수욕장과 아일랜드 리솜 사이를 가로지르던 해안도로가 사라지면서 아일랜드 리솜은 마치 ‘프라이빗 비치’로 꽃지 해수욕장을 품은 것 같은 리조트가 되면서 더욱 입소문이 났다.
두 아이를 데리고 리조트를 방문했다는 김모 씨(33)는 “월요일부터 아이들과 묵고 있는데, 앞에는 바다가 있고 리조트 안에는 스파 시설이 잘돼 있어서 둘 다 즐기기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리솜은 바로 앞 꽃지 해수욕장을 두고 내부에 '오아식스 스파' 시설도 갖추고 있어 아이·어른할 것 없이 물놀이하기 좋다.
게다가 서해안 3대 낙조로 불리는 꽃지 해변의 ‘할미 할아비 바위’의 낙조를 감상할 수 있어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동남아 휴양지 속 리조트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저녁 만찬을 즐기듯, 서해를 바라보며 맥주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해안 국립공원 속 국내 유일의 리조트다.
그 중 ‘선셋 뷰 맛집’으로 통하는 ‘아일랜드 57’의 야외 자리에서 시그니처 버킷칵테일을 마시며 해 질 녘의 분위기를 즐기는 코스는 필수다. 아일랜드 57에서 숫자의 의미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의 풍광이 아름다워 붙여졌단다. 해가 길어진 여름에는 오후 8시를 전후로 방문하면 붉은 해가 높에 뻗은 해송들 사이로 내려와 존재감을 뽐내는 절경을 안주 삼아 맥주 한 잔을 들이켤 수 있었다.
이외에도 미쉐린 맛집으로 유명한 ‘파스타 포포’, ‘화해당’을 비롯해 음악 프로듀서 돈 스파이크의 ‘로우앤슬로우 비비큐’가 들어서 젊은 여행객들을 이끌고 있다.
아일랜드 리솜 관계자는 “이미 8월 말까지 만실”이라며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족한 점들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SNS용 사진 찍기 좋은 태안 ‘포토 스폿’
여름 휴가의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사진은 필수다. 최근 태안에 떠오르는 SNS용 사진 스폿이 있다. ‘신두리 해안사구’다.
마치 사막에 온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모래언덕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꽤 이름난 관광지로 통하고 있다.
여름에는 푸릇푸릇 풀이 자라 완벽한 모래 언덕을 볼 순 없지만, 풀이 나지 않은 모래 언덕을 찾아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권 해설사는 “처음부터 사구에 풀이 피어난 것은 아니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모래가 쌓이는 양이 적어지면서 식물이 식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모래 언덕에 피어난 식물을 덮을 만큼의 모래가 쌓이지 않자 사구에 식물이 식생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현재는 해당화 등 토착 식물이 자라고 있지만, 자리공 등 외래식물이 뿌리를 내리며 자리를 침범하고 있다.
권 해설사는 “처음에는 외래 식물을 제거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뿌려진 씨앗은 3년이 지난 후에도 발아가 되는 등 그 힘이 대단해 제거하고 제거해도 끝이 없었다”라며 “모래만 쌓인 사구는 보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지금은 여러 학자의 주장으로 천연기념물 제431호가 되어 보호받고 있다. 그래서 엄격히 사구 내부로의 출입은 금지다.
그런데도 이날 뽀얀 모래언덕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기 위해 해안사구를 찾은 젊은 커플 관광객은 보호 선을 넘어가 안에서 촬영하기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 즉시 신두리 해안사구에는 “사구 내부에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신두리 해안사구 바로 근처에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되는 자연환경 ‘두웅습지’도 있다.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이 마르지 않는 ‘사구 배후습지’에는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가 서식해 주목받고 있단다.
금개구리는 배 쪽이 황금처럼 누런빛을 띠는데, 참개구리보다 약간 작고 밝은 녹색 등에는 줄무늬가 2개 있다. 개체 수가 적고 잘 움직이지 않아 찾기 힘들단다.
습지 주위로는 데크와 흙길로 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산책하기도 좋다. 한 바퀴 15분이면 충분하다.
걸으며 습지 위에 떠 있는 연꽃잎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주기적으로 연꽃 뿌리를 제거해주기 위해 띄워놓은 파란 작은 배 한 척이 만들어내는 수채화 같은 풍경에 카메라를 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