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KBO리그를 지배하고 있는 로하스. IS포토 2020년 KBO 리그는 멜 로하스 주니어(30·KT)의 것이 되고 있다. 21일 수원 LG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포함해 5타수 4안타(2홈런) 3타점을 올렸다. 21일 기준으로 그는 65경기에서 타율(0.395), 홈런(24개), 타점(63개), 득점(59개), 안타(103개), 장타율(0.755), 출루율(0.446) 등 타격 7개 부문 모두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스위치히터인 그를 '좌타자 로하스'와 '우타자 로하스'로 분리한다면, 아마 둘이 타격 각 부문에서 1·2위를 다툴지 모른다. 그만큼 로하스는 올 시즌 좌·우 타석 가리지 않고 리그 최상급의 정교함과 폭발력을 발휘하고 있다.
로하스에게는 두 차례 전환점이 있었다. 2017년 KT에 입단한 그는 불완전한 스위치히터였다. 왼손잡이인 그가 오른손 타석에 들어서면 테크닉과 파워 모두 떨어졌다. 이승엽 SBS 해설위원은 "로하스가 우타석에 들어서면 투수들이 '생큐'라고 했다"고 전했다. 당시 KT 코칭스태프도 로하스에게 "좌타석에 전념하라"고 조언했다.
로하스가 2018년 스프링캠프에 등장하자 동료들은 그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체중이 8㎏ 늘어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중무장했기 때문이다. 로하스는 "KBO 리그에서 장타를 더 많이 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2018시즌 초반 로하스는 무기력했다. 벌크업 후유증 탓에 스피드가 떨어졌다. 하드웨어가 달라졌지만, 소프트웨어는 그대로인 것 같았다. 스윙이 날카롭지 못했고, 외야 수비 범위도 좁아졌다. 언제든 퇴출당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가 저래서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당시 20대 나이였던 그는 제법 단단했다. 우타석에 들어서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오른손 스윙을 좌타석에서 타격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기존의 선구안과 정교함에 파워를 보강했다. 더 크고 강해진 몸에 맞는 스윙을 찾았다.
재능 위에서 연구하고, 노력한 것이다. 지난 3년의 과정을 거쳐 '좌타자'와 '우타자', '중거리 타자'와 '장거리 타자'가 융복합하며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근육량을 유지하며 유연성을 강화한 올해는 오히려 우타석 성적이 더 좋다.
스위치히터는 상대 투수에 따라 좌우 타석을 바꿔 활용할 수 있다. 오른손 투수가 던지면 대각 방향인 좌타석에서 공이 잘 보인다. 대부분의 변화구가 먼 곳(바깥쪽)에서 가까운 곳(몸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대응하기 쉽다. 우타석에서는 오른손 투수의 투구 궤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등 뒤에서 공이 날아오는 느낌"이라는 과장도 있다.
스위치히터라면 투수에 따라 유리한 타석을 선택할 수 있다. 타자는 그만큼 편안하고, 투수는 그만큼 불안하다. 장기에서 두 개의 말이 동시에 장을 부르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이다.
그런데도 스위치히터는 드물다. 메이저리그(MLB)에서 가장 유명한 스위치히터는 통산 536홈런을 미키 맨틀(1931~95)이다. 현대 야구에서 활약한 타자는 치퍼 존스, 카를로스 벨트란 정도다. MLB 규모와 역사에 비하면 많지 않다.
KBO 리그에서는 이종열 박종호 서동욱 최기문 등이 스위치히터였다. 펠릭스 호세가 스위치히터이지만, 좌타석에 비해 우타석 파워가 크게 떨어졌다. 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밥 먹기조차 어려운데, 양 타석에서 균일한 기량을 보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오른손잡이 김현수(LG)는 초등학교 시절 스위치히터였다가 중학생 때 좌타자로 전향했다. 이정후(키움) 같은 '후천적 좌타자'도 우타석에 굳이 들어서지 않는다. 시야 확보를 하려다 자신이 가진 힘과 기술, 밸런스까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타석을 포기하라"는 말을 로하스가 자주 들었던 이유다.
로하스는 쉬지 않고 길을 찾았다. 벌크업한 몸으로 타구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김강 KT 타격코치와 함께 스윙을 연구했다. 김 코치는 "기본적으로 로하스는 파워와 배트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 타자다. KBO 리그 투수들에게 익숙해지면서 여유도 생겼다"라고 말했다.
'우타자 로하스'는 지안카를로 스탠턴(31·뉴욕 양키스)의 타격에서 힌트를 얻었다. 상·하체 움직임이 작은 자세로 강력한 허리 회전을 만든 것이다. 이를 위해 스탠스도 교정했다. 김 코치는 "우타석에서 로하스는 클로즈드 스탠스(closed stance·앞발을 닫는 자세)로 쳤는데, 스퀘어 스탠스(square stance·두 발이 평행을 이루는 자세)로 수정했다. 좌타석에서는 반대로 오픈 스탠스(open stance)였지만, 역시 스퀘어 스탠스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로하스는 양쪽 타석에서 자신에게 맞는 스윙을 꾸준히 찾아왔다. 이를 함께 고민해준 김 코치를 향해 엄지를 척 올렸다. 이종열 SBS 해설위원은 "스탠스 변화는 눈에 크게 띄진 않는다. 대신 로하스는 이를 통해 기술적·심리적 안정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로하스는 좌·우타석 모두에서 밀어칠 수 있는 파워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변화구 대처 능력까지 더했다. 상대적으로 약했던 우타석에서 변화구 대응 능력이 아주 좋아졌다. 런지(lunge·무릎을 굽힌 자세)에서 좋은 타구가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 좌타석에서는 빠른 공에 더 강하다. '좌타자 로하스'와 '우타자 로하스'는 생김새가 같지만, 기술적으로 미묘한 차이가 있는 이란성 쌍둥이다. 타석을 바꿀 때 다른 배트를 쓴다.
스위치히터는 다른 타자보다 더 많이 훈련해야 한다. 로하스가 항상 동료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는 이유다. 양쪽에서 티배팅을 하고, 배팅 프랙티스(투구가 던져주는 공을 치는 훈련)는 상대 선발 투수에 따라 한쪽에서만 한다. 현역 시절 양손타자였던 이 위원은 "스위치히터가 되면 양쪽 스윙 밸런스가 좋아지는 효과가 나오기도 한다. 로하스는 지금 그런 단계에 올랐다"고 말했다.
많은 타자가 스위치히터가 되지 못한 이유는 이 위원이 말한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 타석에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답을 찾을 수 있는데, 그 전에 대부분의 선수와 코치가 포기한다. 로하스도 3년 전 그런 처지였다.
로하스는 "스위치히터는 공을 보는 데 이점이 있다"면서도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보다 두 배로 훈련해야 한다. 그럴 각오가 돼 있다면 젊은 선수들에게 스위치히터가 되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