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극찬한 ‘K방역’에 있어서 한국의 코로나19 진단키트는 '주연' 역할을 했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검사를 할 수 있었기에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19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기도 전에 남다른 통찰력으로 진단키트 개발에 착수, 발 빠르게 대처했던 천종윤 씨젠 대표이사는 이런 ‘K방역’을 가능케 한 숨은 주역이다.
해외 러브콜·실적 폭증…시총 2위 껑충 바이오기업 씨젠은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코로나19 진단키트의 75% 이상 점유율을 보인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더 인기가 높다. 씨젠에 따르면 6월 말까지 67개국에 3000만 테스트를 수출했다. 코로나19의 재확산세로 씨젠의 진단키트에 대한 러브콜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씨젠은 생산 초기인 1월에는 주당 10만 테스트 생산이 가능했지만 빠르게 증산하며 대응했다.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주당 100만 테스트의 생산량까지 증산했다. 현재는 주당 500만 테스트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 월로 따지면 2000만 테스트 이상 생산이 가능한 셈이다.
세계적으로 계속해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 있어서 씨젠의 진단키트는 계속해서 뻗어 나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씨젠을 향한 국민적인 관심도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의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 꼽히며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폭발적인 관심 덕분에 씨젠은 코스닥 시장에서 단숨에 시총 2위로 뛰어올랐다. 22일 종가 기준(18만7100원)으로 시총 규모가 4조9083억원으로 불어나 에이치엘비·셀트리온제약을 제쳤다. 1위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시총 규모는 15조6000억원대다.
씨젠은 이미 지난해 매출을 뛰어넘는 실적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1220억원이었는데 올해 1분기 매출만 818억원을 찍었다. 4~6월 2분기에 수출 물량이 더욱 늘어난 덕분에 역대 최대 매출이 기대된다. 금융정보업체 인포맥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영업이익만 1561억원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30배 이상 증가한 영업이익 수치다. 2분기 매출은 26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지난해 말에만 해도 시총 43위에 불과했던 씨젠이 주가 폭등으로 2위까지 뛰어오를 수 있었던 건 천 대표의 발 빠른 대응 덕분이다. 천 대표는 지난해 12월 31일 중국 우한시에서 바이러스성 폐렴 환자가 발병했다는 뉴스를 접한 뒤 회사의 모든 작업의 중단 명령을 내리고 모든 역량을 집중해 진단키트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고 2주 만에 진단키트 '올플렉스(Allplex 2019-nCOV Assay)'를 개발했다.
천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 1월 27일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에서 긴급 연락이 왔고, 2주 만에 긴급 사용승인을 받았다. 천 대표는 “긴급 사안이었기 때문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보통 6개월 이상 걸리는 절차를 2주 만에 승인받은 건 파격이었다”고 말했다. 국내의 긴급 사용승인에 앞선 2월 7일에는 유럽체외진단시약 인증을 받기도 했다.
분자진단 세계 최고 기술 보유…60조원 시장 겨냥 단순히 예지력과 발 빠른 대응만으로 성공을 거둔 건 아니다. 20년 동안 매달렸던 분자진단 연구의 성과이자 결실이었다. 분자진단은 환자의 혈액·객담·소변 등 체외진단으로 유전자 검사(DNA, RNA)를 통해 질병을 진단하는 기법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항원과 항체 반응을 이용하는 기존 진단법보다 빠르고 정확해 선진 기법으로 꼽힌다. 천 대표는 “진단키트에 씨젠의 20년 연구 결과가 집약돼 있다. 하나의 튜브로 다수의 유전자를 동시에 검사하는 것은 원리는 알아도 개발이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씨젠이 특허를 낸 분자진단에 필요한 유전자 증폭기술 덕분에 한 번에 다수의 유전자 검사가 가능한 것이다.
씨젠의 진단키트는 4~6시간 만에 검사 결과가 나올 정도로 정확한 데다 빠르다. 자동검사 시스템 도입 덕분이다. 씨젠은 샘플이 병원에 도착하면 핵산 추출, 유전자 증폭 검사, 결과 판독, 보고와 집계까지 자동 처리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 같은 자동 시스템 덕분에 국내 코로나19 접촉자들의 신속한 감염 여부 확인이 가능했다. 씨젠은 “수동으로 100명을 검사하는 시간에 자동검사는 1000명을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천 대표는 분자진단의 대중화를 겨냥하고 있다. 기존에는 분자진단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국내의 의사와 전문의들은 동시 다중 검사가 개별검사보다 정확할 수 없다고 여기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분자시약이 활성화된 선진국에서 먼저 씨젠의 기술력을 인정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계기로 분자진단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에 충분히 보급화가 가능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분자진단은 기존의 면역진단법에 비해 저렴하고 빠르다는 경쟁력을 지녔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프로스트&설리번에 따르면 글로벌 체외진단 시장은 6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로슈와 키아젠 등 다국적 제약사가 장악한 상태지만 분자진단 기술로 재편되는 추세다. 씨젠은 분자진단의 최고의 기술을 갖췄다고 평가받고 있다. 씨젠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 대표는 “10년 내 분자진단 검사가 일상생활에 들어올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또 씨젠은 ‘첨단 IT 및 플랫폼 기업’이라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20년간의 분자진단 기술과 경험을 집약한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씨젠은 인공지능(AI) 기술이 가미된 이 시스템을 ‘SGDDS(Seegene Digitalized Development System)’이라고 명했다. SGDDS는 전 세계 어디서건 누구든지 시약 제품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혁신적인 플랫폼이 될 전망이다. SGDDS는 내년 상용화가 목표다.
또 씨젠은 분산된 생산 규모를 집약하고 다양한 제품군의 생산능력을 높이기 위해 경기도 하남시에 생산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듯이, 씨젠도 국내에서 분자진단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씨젠은 계속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