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무관중 경기가 이어지면서 야구장 좌석 곳곳에서 거미줄을 볼 수 있었다. 김식 기자 지난주 한화와 KIA 경기가 열렸던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를 위해 관중석으로 내려갔다. 그물망을 사이에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인터뷰하는 게 2020년 KBO리그의 '뉴 노멀'이다.
그물망은 선수와 기자 사이에만 놓인 게 아니었다. 의자와 의자 사이를 잇는 그물, 거미줄도 꽤 많이 보였다. 시즌이 한창 뜨거운 7월, 열정적인 응원의 용광로인 대전구장 관중석에서 본 거미줄은 퍽 낯설었다.
TV 중계로 봤던 대전구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았다. 텅 빈 관중석이 을씨년스러워 보이자 한화 구단은 팬들로부터 인형을 기증받아 의자에 앉혔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인형들은 팬들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ESPN 등 외신들은 재기발랄한 이 모습을 소개했다.
야구장에 직접 가보니 알 수 있었다. 인형은 사람을 대신할 수 없었다. 숨 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 인형은 중계화면의 배경일 뿐이었다. 그라운드는 5월 5일 개막전부터 돌풍이 몰아쳤으나, 관중석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곳곳에 보이는 거미줄은 야구와 팬이 격리된 '언택트 야구'의 단면이었다.
전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비상(非常)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와중에 KBO리그는 한·미·일 야구 중 가장 먼저 개막했다. 무관중 경기가 비상시국의 일상(日常)이었다.
아무리 언택트 시대라지만, 관중 없는 야구는 이상(異常)했다. 함성이 없으니 선수들의 플레이가 공허해 보일 때가 있었다. 텅 빈 관중석은 야구가 시시해 보이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아무리 대단한 기량이 있다 해도 의미와 재미가 없으면 스포츠는 '그깟 공놀이'로 폄하된다. 선수들의 플레이에 열광하고 실망하는 팬이 있어야 승리와 패배가 의미를 갖고, 재미를 얻는다. 팬이 없다면 프로야구도 사회인 야구와 다를 게 없다는 걸 우리는 '이상한 일상'을 통해 느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프로스포츠 관중입장 결정 이후 처음으로 관중석의 10% 규모로 입장을 시작한 프로야구팬들이 개막 후 3개월 만에 야구장을 찾았다. 2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LG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경기를 찾은 야구팬이 발열체크와 QR코드 확인을 하며 입장하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지난 26일 야구장 문이 드디어 열렸다.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프로야구 관중의 입장을 각 구장 수용인원의 10% 내에서 허용한 데 따른 것이다. 서울 잠실구장과 고척스카이돔, 수원 KT위즈파크에 2000명 안팎의 팬들이 입장했다.
입장객은 이미 온라인 예매를 통해 티켓을 확보한 터였다. 그런데도 김솔아(27·잠실구장 1호 입장) 씨는 경기 시작 서너 시간 전 야구장에 도착해 줄을 섰다. "너무 설레서 일찍 야구장에 왔다. 모두 안전하게, 오래 야구를 봤으면 좋겠다"라면서.
10%의 외침은 뜨겁고 강렬했다. 특히 LG-두산의 라이벌전이 열린 잠실의 함성은 2424명이 마스크를 쓴 채 내지른 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우렁찼다. '직관(직접 관람)'에 대한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관중석의 불과 10%가 채워졌을 뿐이지만, 팬과 함께 호흡하는 야구장은 활력을 찾았다.
팬데믹 시작부터 계산하면 관중석 10%가 개방되기까지 4개월 이상이 걸렸다. 코로나19 확산세를 보면, 적어도 우리는 1~2년은 '이상한 일상'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이 정도의 일상을 즐기기까지 오랜 기간 방역 당국과 시민의 노력이 필요했다. 5~6월 이후 각종 모임이 이뤄졌다. 식당과 술집 테이블이 꽉 찼고, 심지어 워터파크까지 개장했다. 그러나 방역 당국은 프로스포츠의 관중 입장을 가장 마지막에 허용했다. 야구장 문이 열리면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신호를 시민들에게 줄까 봐 경계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야구장 문이 10분의 1쯤 열렸다. 관중 입장 첫날, 팬들은 방역 수칙을 비교적 잘 지켰다. 마스크를 써야 했고, 응원가를 부를 수 없었다. 관중석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가족·친구와도 떨어져 앉아야 했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야구를 직접 보고 싶어하는 팬들의 간절함을 우리는 목격했다.
2020프로야구 KBO리그 두산베어스와 LG트윈스의 경기가 26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4대 3으로 승리, 위닝시리스를 거둔 LG선수들이 경기 후 자축하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관중 입장에 대해 여전히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런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야구장을 찾는 팬들은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정교한 방역 매뉴얼이 작동하는 야구장에서 코로나 19가 확산한다면 방역의 저지선이 뚫리는 것이다.
이 기회를 빌려 선수들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것도 있다. 관중석에 팬 대신 인형과 거미줄이 자리한 2020년의 봄과 여름을 잊어선 안 된다. 때로는 선수들을 귀찮게 하고, 비난하더라도 팬이 있어야 야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팬 덕분에 선수가 연봉을 받고, 명예를 얻는 것이다.
오랫동안 일상을 함께했던 이들은 거리 두기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팬과 선수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었다. 모두 알았지만, 모른 척했던 것들을 돌아볼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