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 브랜드 화장품 1위 '이니스프리'의 추락이 심상치 않다. 최근 11년 동안이나 함께 해온 모델 윤아와 결별하는 데 이어 올 2분기 실적도 적자 전환했다. 한때 아모레퍼시픽그룹(이하 아모레)의 '복덩이'였던 이니스프리는 국내∙외 매장 정리수순을 밟는 중이다. 가맹점주들은 아모레 본사가 매장 운영을 고의로 방해한다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울분의 글을 올리고 있다.
이니스프리의 상징, 윤아와 이별 '융니스프리', '인간이니스프리'.
소녀시대 멤버 윤아의 이름 뒤에는 이런 수식어가 붙곤 했다. 데뷔 14년 중 무려 11년 동안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의 '뮤즈'로 활동하면서 붙은 별칭이었다. 11년이라는 시간은 화장품 광고 역사에도 의미가 있는 기록이다. 현재 국내 최장수 화장품 모델은 LG생활건강 럭셔리 브랜드의 얼굴로 활동 중인 배우 이영애다. 2006년부터 무려 15년째 전속모델로 뛰고 있다. 배우 김희애는 일본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SK2를 13년 동안 홍보했으나, 2018년 무렵 계약을 종료했다. 그러나 이영애와 김희애는 선 굵은 배우로서 오랜 세월 활동한 스타였다. 아이돌 가수 출신인 윤아가 11년 동안 이니스프리 모델을 지킨 것에 더욱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다.
윤아 특유의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원 브랜드숍이었던 이니스프리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데 큰 힘을 보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제주도의 깨끗한 자연을 모티브로 한 이니스프리의 정체성을 알리는데도 K팝 스타 출신인 윤아의 덕이 적지 않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둘의 관계는 2020년 여름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이니스프리는 지난 1일 공식 인스타그램에 "함께한 11년, 그리고 아름다운 안녕. 이니스프리와 윤아는 20년 8월을 마지막으로 그동안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려 합니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이니스프리는 함께 공개한 사진과 영상을 통해 그동안 윤아가 이니스프리와 함께했던 모습을 담으며 '헌정'의 의미까지 살렸다. 역대 뷰티 광고주가 모델과 이별을 택하면서 헌정 영상을 내보낸 사례는 '엘라스틴(LG생활건강)'과 전지현 등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아모레 관계자는 "윤아 측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런 결정을 내렸다. 윤아와 이니스프리의 미래를 응원해 달라"고 말했다.
매장 축소에 가맹점주 반발까지
이니스프리와 윤아의 결별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최근 2~3년 사이 급격하게 쪼그라든 실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모레의 위기의식은 올해 2분기 실적에서 가늠할 수 있다. 아모레의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4% 감소한 1조 557억원, 영업이익은 60% 감소한 352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해외에서 손실이 컸다. 해외 매출은 21% 감소한 4054억원을 기록했다.
그 중심에는 이니스프리가 있었다.
이니스프리는 2017년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니스프리는 2016년 7679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이후 2017년 6420억원, 2018년 5989억원, 2019년 5519억원까지 떨어졌다. 올 2분기에는 영업손실 10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매출은 88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중저가 화장품은 중국 내 비슷한 콘셉트의 브랜드가 성장하며 도전을 맞이했다. 가두점 중심의 원 브랜드숍은 운영비 증가로 갈수록 어려운 상황인데, 중국 사드 보복과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이니스프리가 직격탄을 맞았다"고 했다.
이니스프리는 몸집 줄이기를 선언했다.
이니스프리는 610여 개에 달하던 이니스프리 중국 현지 매장을 작년 말 대비 100개 이상까지 줄인다는 방침을 세웠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기준 951개점이었던 점포는 올해 2분기를 기점으로 856개까지 줄였다. 아모레는 매장을 줄여나가는 대신 온라인 사업에 방점을 찍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이니스프리 가맹점주들의 반발이다.
자신을 이니스프리 가맹점주라고 소개한 한 청원인은 지난 6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전국 매장을 없애달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아모레 본사가 '온라인 전용 제품'을 판매하는 등의 갑질로 인해 매출이 급감했다면서 "하루하루 죽고 싶은 마음으로 출근한다"고 썼다. 아모레가 가맹점주가 경영하는 매장을 '테스터배드'로 전락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모레는 지난 7월 아모레퍼시픽 데일리뷰티 유닛을 전담해 온 임혜영 전무를 이니스프리의 대표로 끌어올렸다. 추락하는 이니스프리의 실적과 가맹점주와 관계를 회복이 그의 주 임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본사와 가맹점주 사이에 오랜 시간 곪았던 문제가 코로나19로 가속화한 상황"이라며 "결국 온라인 강화로 갈 수밖에 없다. 임혜영 대표가 최대한 조용히 갈등을 봉합하는 것을 숙제로 안게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