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오너경영 체제로 바뀌고 있다. 그 중심에는 현대중공업지주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있다. 정 부사장은 최근 현대중공업지주의 얼굴로 전면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현대중공업지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7월 결혼하고 가정까지 꾸린 정 부사장은 진정한 경영 시험대에 올랐다. 앞으로 현대중공업가의 '가장' 역할도 잘 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우선 현대중공업이 겪고 있는 ‘3중고’를 타개해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수주 가뭄, 하도급 갑질, 임단협 협상과 관련해 난항을 겪고 있다. 3중고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야 하는 시점이다.
정 부사장은 해외유학 등을 마치고 현대중공업에 복귀한 2013년에 경영기획팀 선박영업부 수석부장을 맡았다. 복귀 1년 만에 현대중공업 사상 최연소 임원이 됐고, 재계에서 가장 어린 임원이라는 타이틀도 얻으며 힘을 받았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회사의 체질 개선뿐 아니라 젊고 역동적 조직을 만들기 위해 능력 있는 리더를 발탁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며 정 부사장의 ‘고속 승진’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현재 가삼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가 선박영업을 총책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 부사장은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대표로 수주 실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다. 정 부사장은 멘토인 가 대표와 함께 그룹의 운명을 걸고 영업 최전선을 누비고 있는 셈이다.
조선해운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계 선박 발주량은 575CGT(269척)으로 10년 내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로 수주 절벽에 몰리고 있다. 전년 동기 42%나 감소한 수준이다. 이로 인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은 연내 수주 목표치를 10~20% 수준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하반기에 두드러진 수주 계약을 맺지 못한다면 현대중공업그룹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조선업의 수주잔량도 1914만CGT로 충분치 않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정 부사장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성과를 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도급 갑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씻어내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해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9억7000만원이라는 역대 최고액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기술탈취를 통해 피해를 준 것으로 나타났지만, 현대중공업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세계 조선산업을 이끄는 글로벌 리딩업체로 공정한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그동안 만연했던 ‘하도급 갑질’에서 벗어나 상생하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사 갈등도 문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5월부터 임금 및 단체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해를 넘기고 모두 62차례가 넘는 실무교섭과 본교섭에도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노조는 여름휴가가 끝나는 17일 이후 강경투쟁을 예고하고 있어 선박 건조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 부사장이 그룹의 차세대 리더로서 원만한 협상을 끌어내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