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팀들은 보통 외국인 타자를 한 명만 보유한다. 전력 극대화를 위해 거포를 데려와 중심 타선에 포진시킨다. 벌써 시즌 30홈런을 때려낸 로베르토 라모스(LG)가 대표적인 경우다. 정교한 타격이 장점이라면 호세 페르난데스(두산)처럼 테이블 세터로 활용하기도 한다.
NC는 외국인 타자 애런 알테어(29)를 '8번 타자'로 내세우고 있다. 생소한 기용법이다. 알테어가 처음부터 8번 타자는 아니었다. 알테어는 삼성과의 시즌 개막전 때 2번타자·중견수로 선발 출전했다. 팀의 13번째 경기인 5월 20일 잠실 두산전까지 2번과 4번, 5번, 6번으로 번갈아가면서 투입됐다. 이동폭이 꽤 컸으나 중심타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발목을 잡은 건 타격 슬럼프였다. 당시 알테어의 타율은 0.182(44타수 8안타)에 그치고 있었다. 장타율(0.341)과 출루율(0.265)을 합한 OPS도 0.606으로 낙제 수준. 일찌감치 '퇴출설'이 불거졌다.
알테어의 활용법을 고심하던 이동욱 NC 감독이 내린 처방은 타순 조정이었다. 알테어는 5월 21일 잠실 두산전에서 올 시즌 처음으로 8번타자로 출전했다. 외국인 타자를 하위 타순에 내리는 건 '결단'에 가깝다. 이로 인해 중심 타선의 무게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칫 외국인 선수의 자존심까지 건드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알테어는 메이저리그(MLB) 필라델피아에서 뛴 2017시즌 홈런 19개를 때려낸 커리어가 있다.
알테어는 8번타자로 나선 첫 경기에서 4타수 3안타(1홈런) 3타점을 기록했다. 이후 몇 경기를 거치면서 타순이 사실상 '8번'에 고정됐다. 적응력이 기대 이상이다. 가끔 4번과 5번에 투입되는 경우가 있지만, 8번 타순과 비교하면 생산성에서 큰 차이가 있다. NC는 양의지, 박석민, 나성범을 비롯한 국내 타자들의 뎁스가 꽤 탄탄해 알테어를 상위 타선으로 올릴 필요성이 크지 않다.
알테어도 하위 타순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자신을 "8테어"라고 부를 정도다. 그는 "감독님이 내주시는 라인업과 상관없이 매 타석 열심히 한다. (타순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며 "시즌 초 타격이 부진했을 때 감독님과 상의했다. 그때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8번 타순의 기대 타율은 꽤 낮다. 지난해 KBO리그 평균 8번 타순 타율은 0.236였다. 올 시즌 NC의 8번 타순 타율은 0.306로 리그에서 유일하게 3할대를 기록 중이다. 그 중심에는 알테어가 있다. 중심 타선에서 내려온 그가 찬스를 살리고, 상위 타선으로 또 다른 찬스를 연결하고 있다.
알테어는 3일까지 8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9, 21홈런, 78타점을 기록 중이다. 흠잡을 곳이 없다. 도루를 5개만 추가하면 20-20클럽 가입이 가능하다. '8번 타순'에서 반등한 알테어. 선두 NC를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