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타이밍이다. 스케일은 하늘과 땅 끝 차이지만 각각의 이유로 '문제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코로나19 시국, 영화관 방문을 고민하는 관객들에게는 특별한 고민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 실사 영화 '뮬란(니키 카로 감독)'과 잊을만 하면 한번씩 존재감을 내비치는 홍상수 감독 신작 '도망친 여자(홍상수 감독)'가 17일 나란히 개봉, 한 날 한 시 스크린에 걸린다. 이미 문제작으로 각인됐지만, 한 작품이 아쉬운 극장들은 신작 편성에 꽤나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대대적인 응원을 받으면서 개봉해도 본전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다. 매일 매일 새로운 논란이 축적되고 있는 '뮬란'과, 해외 낭보를 전해도 국내에서는 '브이로그' 취급을 받는 홍상수 감독 영화는 국내 관객들에게는 일찌감치 비호감으로 찍혔다. 특별 관심 대상에서 제외된 채 레이스를 시작하게 됐다.
미국·중국도 외면한 '뮬란', 제3국 흥행 가능?
최근 몇 년간 '무조건 믿고 보는', '개봉하면 흥행'이라는 맹목적 애정을 한 몸에 받으며 한국 관객들에게 특히나 흡족한 결과를 얻어냈던 디즈니는 위기 속 희대의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차이나 머니를 손에 쥐고 백인이 만든 동양 영화 '뮬란'이 글로벌 동네북으로 전락, 미국과 중국 정부까지 예민하게 만든 것.
주연배우 유역비 중국지지 발언부터 최근 신장 위구루자치구 촬영 논란까지 할리우드와 차이나 머니의 의기투합은 영화의 본질을 넘어 정치적 이슈로 불거졌다. 완성된 작품 역시 디즈니 특유의 색채는 담아내지 못한 채 '동양 문화 이해 부족'이라는 무지함만 확인 시켰을 뿐. 명작으로 회자되는 원작에 사죄해야 할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개봉을 포기하며 디즈니 자사 OTT 플랫폼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풀어 버렸고, 흥행의 기점이 돼야 할 중국 본토에서도 외면한 작품을 제 3국에서 소비시켜 줄 이유는 특별히 없다. 코로나19는 '뮬란'에게 오히려 좋은 핑계거리가 됐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중국에서 개봉한 '뮬란'은 첫 주 주말 2320만 달러(한화 274억 6184만원)를 벌어 들였다. 역대 중국 개봉작 중 큰 흥행을 맛보지 못했던 '신데렐라' '말레피센트2' 등과 비슷한 수치다. 중국 내에서는 '뮬란' 관련 보도가 일절 금지됐고, 심지어 '타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며 '뮬란'과 디즈니를 비판했다.
개봉 하루 전인 16일 '뮬란' 실시간 예매율은 26.7%로 다소 저조하다. 전체 1위 기록이기는 하지만 개봉 한 달을 바라보는 '테넷' 예매율 22.8%와 큰 차이는 없다. 극장 관계자는 "오프닝 스코어는 기대해 볼만 하지만 장기 흥행은 어불성설이다. 일주 천하로 끝날 조짐이라 첫 주 편성에만 힘을 쏟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세상 이슈 다 끌어모은 '도망친 여자'
홍상수 감독의 24번째 장편 영화이자 김민희와 7번째 호흡맞춘 '도망친 여자'는 결혼 후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던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두 번의 약속된 만남, 한 번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과거 세 명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감희를 따라가는 영화다.
지난 3월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에 해당하는 감독상을 수상하며 깜짝 주목을 받은 후, 최근 16회 부쿠레슈티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아 또 한번 해외를 통한 역 이슈에 성공했다. 그들만의 굳건한 세계관은 여전하지만 소소한 변화가 엿보인다.
홍상수 감독의 뮤즈이자 불륜 관계를 지속 중인 김민희가 '결혼 5년 차' 감희를 연기했고, 서영화·송선미·김새벽이 감희가 만나는 세 명의 지인으로 각각 등장한다. 영화는 조금 더 짜임새 있어졌고, 무엇보다 '여성 중심 영화'라는 지점이 주목도를 높인다.
또한 내에서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들만의 세상에서 은둔, 칩거 중이지만 누구보다 세상 만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도망친 여자'로 다 보여준다. 김민희의 먹방부터 채식주의, 길거리 고양이밥 호불호, 데이트 폭력, 부동산 이슈까지 녹여냈다. 영화를 보면 공감할 수 있지만 몇 명이 관람할지가 관건이다.
홍상수 감독 작품은 내놓을 때마다 하락세를 경신 중이다. 누적관객수 1만 선을 지키지 못한지는 오래 됐고, 전작 '강변호텔' 역시 6912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극장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2.2단계로 완화되기는 했지만 두 작품이 극장의 숨통을 트여 줄 작품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