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한 명이 일을 그만두려고 상사와 상담을 하던 중 동료들과 대마초를 피운 일을 털어놨다고 합니다." 750조원이 넘는 국민 노후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서 30대 직원 4명이 대마초 흡입 혐의로 입건된 사건을 두고 공단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 관계자는 2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퇴직하려 한) 직원이 적응이 어려웠던 것 같다. 섬세한 스타일이어서 업무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결혼 후 (기금운용본부가 있는) 전주에 혼자 내려왔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도 "이 사건은 퇴직하려는 직원 한 명이 상사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얘기한 내용을 공단 측에서 파악해 수사기관에 제보한 개념"이라고 했다.
공단은 지난 7월 자체 감사를 벌여 이들 4명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 9일에는 공단 내 징계위원회가 열려 4명이 해임조치됐다. 이번 사건이 지난 18일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 공단 내부에서 대마초와 관련된 소문은 거의 돌지 않았다고 한다. 부동산·인프라·사모펀드 등에 투자하는 이들 업무 특성상 부서 인력이 10명 안팎으로 적은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이후 직원끼리도 거의 만나지 않는 분위기여서다.
직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동료 4명이 지난 7월 갑자기 사무실에서 사라졌지만 "대마초 때문에 업무에서 배제됐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순환 근무인가" "실사 때문에 외근을 나갔나" "코로나19 때문인가" "개인 사정이 있나" 등 다양한 추측만 나돈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된 A씨 등 4명을 이달 안에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 등은 지난 2월부터 6월 사이 퇴근 후 전주에 있는 직원 1명의 숙소에서 한 차례 대마초를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대마초는 이들 중 1명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사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이 이들의 모발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마약 반응 검사를 의뢰한 결과 3명이 양성, 1명은 음성이 나왔다. 경찰은 "모발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더라도 본인과 동료들이 '대마초를 피웠다'고 시인했기 때문에 혐의 입증에는 문제 없다"고 전했다.
공단 안팎에서는 "직원들이 지방에 혼자 내려와 살다 보니 무료해서 대마에 손을 댄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경찰은 이들 4명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지만, 마약 등 직접적 증거는 찾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결과 대마초 외 다른 마약 반응은 없었다"며 "피의자들의 거주지가 모두 서울인 데다 변호사들도 서울 로펌 소속이어서 조사 일정을 맞추다 보니 수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이 사건은 전임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월 총선 출마를 위해 지난 1월 중도 사퇴, 이사장 자리가 7개월간 공석일 때 벌어졌다. 김용진 전 기획재정부 2차관이 후임 이사장에 임명된 건 지난달 31일이다.
김 이사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난 20일 대국민 입장문을 내고 "국민들께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책임을 절감한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을 공단이 쇄신하는 계기로 삼아 일탈·불법 행위에 대한 퇴출 기준 강화 및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