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야구학’은 야구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야구를 새로 배우는 과정입니다. 국보 투수로, 프로야구 감독으로, 국가대표 코치·감독으로 지낸 과거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40년 넘게 축적된 ‘선동열 야구’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은 올해 초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로 지도자 연수를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그의 전문 분야인 투수 파트 외에도 타격과 수비, 작전 등을 폭넓게 경험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프런트 오피스 미팅을 통해 구단의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할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연수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온택트(ontact)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을 통해 MLB를 공부했고, 오프라인에서 야구장 밖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수개월 동안 야구를 공부하면서 선동열 전 감독은 새로운 정보를 얻었습니다.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야구를 봤습니다. 관념적으로 알았던 정보를 데이터를 통해 재해석 했습니다. 그의 여정을 일간스포츠가 따라갑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 주〉
1940~50년대 메이저리그(MLB) 최고의 타자였던 테드 윌리엄스(1918~2002)는 명저 『타격의 과학』을 유산으로 남겼다. “타격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기술”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MLB에 ‘플라이볼 혁명’이라는 말이 유행할 때, 80년 전의 전설 윌리엄스가 소환됐다. 그는 이미 1971년 발간한 자신의 책에서 약간의 어퍼컷 스윙(slight uppercut)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윌리엄스는 “오랫동안 (지면과 수평을 이루는) 레벨 스윙이 옳다고 여겨졌다. 나도 그렇게 믿었고,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이상적인 스윙은 평평하지 않다(not level)”며 “타구를 세게 쳐서 공중에 띄워라. 거기에 돈(성공)이 있다”고 말했다.
윌리엄스가 말한 어퍼컷과 플라이볼 혁명 시대의 어퍼컷은 다른 것일까. 솔직히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두 스윙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 갖게 된다. 이상적인 스윙이 되기 위한 조건은 분명히 있다. 투구와 방망이가 만나는 구간인 임팩트 존(impact zone)이 넓어야 할 것이다.
앞선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180㎝ 이상의 높이에서 시작한 투구는 5~7도 각도로 하강한다. 임팩트 존을 통과하는 방망이 궤적은, 투구의 각도만큼 올라가야 좋은 타구를 만들 확률이 커질 것이다. 레벨 스윙 개념인데, 지면이 아닌 투구 궤적과 평평한 것이다. 실제로는 약간의 어퍼컷 스윙이 되는 것이다.
방망이의 궤적이 5~7도 올라간다고 해서 어퍼컷 스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런 궤적이라면 라인 드라이브(11~20도) 타구 비율은 높아지겠지만, 홈런이 많이 나오는 발사각(20~35도)을 만들기 쉽지 않다.
윌리엄스는 그래서 “살짝 올려치라”고 말한 걸까. 이상적인 타격은 레벨 스윙과 어퍼컷 스윙이 결합한 형태일까. 그게 실제로 가능한 걸까. 공부하면 할수록, 타격은 참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봤다. 투수는 자기 폼으로 공을 던지면 된다. 노력에 따라 일관된 폼으로 던질 수 있다. 그러나 타자는 투구에 대응해야 한다. 구종과 코스에 따라 스윙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퍼컷 스윙을 하는 타자는 하이 패스트볼에 약점을 보인다. 높게 날아오는 빠른 공을 띄워 치는 스윙을 만들기 어려워서다. 같은 이유로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도 어퍼컷 스윙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타자는 최선의 스윙을 만들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투구에 따른 대응이다. 그래서 많은 타격 이론가가 스윙 궤적보다, 강한 타구를 만들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윌리엄스도 마찬가지였다.
발사각보다 중요한 타구 속도
난 타격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평생 야구를 했기에 생체역학(biomechanics) 관점에서 타격 폼을 이해할 순 있다.
투수의 피칭도, 타자의 스윙도, 골프의 스윙도 폴로 스루(follow through, 임팩트 후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마무리 동작)가 중요하다. 동작을 자연스럽게 끝내면 스윙의 힘이 극대화한다. 타격 전문가 김용달 선배의 저서 『용달매직의 타격 비법』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폴로 스루는 힘을 유지하기 위한 동작이다. 그러나 폴로스루를 위해 인위적으로 손목 힘을 더 쓴다면 스윙의 폭이 좁아진다. 힘의 방향이 (앞이 아닌) 옆으로 돌아 땅볼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투수의 메커니즘이 그렇듯, 타자의 스윙도 자연스러운 중심 이동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강력한 패스트볼과 현란한 변화구를 공략해 ‘강한 타구’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장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히팅 포인트(투구와 스윙이 만나는 지점)가 앞발 부근에 형성돼야 한다. 타자의 두 팔꿈치가 최대한 몸에 붙어 나왔다가 앞으로 쭉 뻗는 동작에서 힘이 폭발한다. 앞선 칼럼에서 제이콥 디그롬의 투구 폼을 설명한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어깨 위에 있었던 배트가 내려와 임팩트 존을 통과한 뒤에는 스윙의 끝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게 폴로 스루이며, 자연스럽게 약간의 어퍼컷 스윙이 만들어진다. 윌리엄스의 이론과 플라이볼 혁명은 결국 여기서 만나는 것 같다.
2018년 MLB 일부 구단의 캠프에서는 플라이볼을 '생산'하는 훈련을 했다. 난 직접 본 적이 없지만, 밀워키의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신기한 모습을 목격한 KBO리그 관계자들이 있다. 내야와 외야 사이에 10m 높이의 펜스가 설치된 것을 봤다고 한다.
밀워키 구단은 타자들에게 그 펜스 너머로 타구를 날리도록 주문했다. 20도 이상의 발사각을 만드는 훈련이었다. 유망한 밀워키 타자들이 어퍼컷 스윙을 장착하려고 애썼다.
그해 겨울 마이애미에서 밀워키로 트레이드된 크리스티안 옐리치는 2018년 내셔널리그 타격왕(0.326)과 최우수선수상(MVP)을 차지했다. 그해 옐리치가 때린 홈런(36개, 리그 3위)은 2017년보다 18개나 늘었다.
옐리치의 타격이 폭발한 데에는 홈구장이 타자 친화적인 밀러 파크로 바뀌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그의 배럴 타구 비율은 2017년 7%에서 2018년 12.9%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15.8%로 증가했다.
2018년 10월 ‘옐리치는 발사각 논쟁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제목의 MLB닷컴 기사가 눈에 띄었다. 당시는 저스틴 터너(LA 다저스) 등 플라이볼 혁명의 주인공들이 MLB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시기였다.
당시 옐리치는 놀라운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땅볼도 꽤 많이 때렸다. 2017년 땅볼/뜬공 비율이 1.73이었는데, 2018년 이 비율이 2.15로 오히려 늘었다. 예전부터 그는 땅볼 비율이 꽤 높은 타자였다. 그러니까 옐리치는 많은 땅볼을 때리는 동안에도 타율과 홈런이 증가한 것이다.
옐리치는 MLB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난 의식적으로 발사각을 바꾸려(높이려) 한 적이 없다. 공을 세게 치지 못한다면, 발사각은 내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플라이볼 혁명은 불변의 이론이나 문제의 해결책이 아닌 트렌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타구 발사각에 대해 옐리치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의 타격 데이터가 이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커리어 내내 플라이볼보다 그라운드볼을 많이 때렸다. MLB 커리어 8년 동안 기록한 땅볼이 뜬공보다 두 배 이상(땅볼/뜬공 비율 2.12) 많다.
2018년 옐리치의 타구 평균 발사각은 5.0에 불과했다. 이해 MLB 전체의 평균 발사각(12.3)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리그 홈런 3위에 올랐다. 플라이볼이 많지 않았지만, 뜬 공의 대부분은 속도가 빨랐다는 뜻이다.
MLB닷컴 기사 끝에 옐리치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최고 타자들의 콘택트 순간을 찍은 사진을 보라. 똑같은 자세가 보일 것이다. 다른 건 사고방식(mindset)이다. 다운컷을 하라는 사람도 있고, 어퍼컷을 하라는 사람도 있다. 결국 그들은 같은 곳에서 만난다. 발사각에 매달려 성공한 선수가 있고, 그렇지 않은 선수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 가운데 있으려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플라이볼 혁명이라는 ‘현상’에 집중했지만, 타격의 ‘본질’이 바뀐 건 아니다. 최대한 정확하게 쳐서 강한 타구를 만드는 건 시대를 초월한 목표다. 최적의 히팅 포인트와 자연스러운 폴로 스로가 그래서 중요하다.
스윙 궤적이나 발사각은 스탯캐스트에 의한 현상 분석이다. 이것이 결코 타격의 목표일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윌리엄스, 그리고 옐리치로부터 나는 또 배웠다.
타자를 못 믿는다고 말한 이유
선수 시절 내 마지막 타석은 일본 주니치에서 뛰었던 1999년 7월 22일 요미우리와의 도쿄돔 경기에서였다. 4-1로 앞선 8회 말 2사 만루에서 마운드에 올라 위기를 넘겼고, 9회 초 무사 1·2루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호시노 센이치 당시 주니치 감독은 내게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를 지시했다. 요미우리 배터리는 보내기 번트를 예상했다. 내야진이 번트에 대비해 움직였고, 투수는 전력으로 던지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공이 날아와 내 방망이에 맞은 것이다. 타구는 내야를 통과해 외야 펜스까지 굴러가는 2루타가 됐다. 내가 어떻게 쳤는지 모르겠다. 일본 진출 후 16타수 무안타 끝에 때린 첫 안타였다. 해태와 주니치 시절 몇 차례 타석에 들어섰지만, 삼진으로 물러난 기억이 대부분이다.
타격은 참 어렵다. 타자들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려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난 선수 시절 KBO리그에서만 40차례 패전투수가 됐다. 그중 0-1로 진 경기가 꽤 많았다. 특히 잊히지 않는 승부가 있다. 내가 해태에서 뛰었던 1988년 4월 17일 광주경기였다.
난 그날 9이닝을 완투하며 삼진 11개를 빼앗았다. 점수는 단 1점만 줬다. 이날의 주인공은 상대 투수였던 빙그레 이동석이었다. 그는 리그 역사상 네 번째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게다가 4사구와 안타를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실책 2개가 아니었으면 퍼펙트게임까지 가능했을 것이다.
그날 밤, 나 혼자서 씩씩거렸던 기억이 난다. 프로에서 노히트노런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노히터 경기의 패전투수가 됐으니 너무 분했다.
‘타선이 점수를 내줬다면 내가 승리투수가 되지 않았을까?’
‘수비가 좀 도와줬다면 나도 0점으로 막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소주 한 병을 들이켠 뒤 잠들었다.
다음날 야구장으로 출근해서 내 동료들을 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나 싶었다.
내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들의 도움이 없으면 승리할 수 없다. 야수의 수비를 탓할 게 아니라 삼진으로 잡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해야 했다.
이듬해 내가 노히트노런(1989년 7월 6일 광주 삼성전)을 기록했을 때는 타자들의 도움을 듬뿍 받았다. 이날 해태는 10-0으로 이겼다.
내가 투수로서 여러 기록을 세우는 데에는 타자들의 도움이 아주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도 나는 감독을 하면서 “타자는 믿을 게 못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말의 저의는, 투수가 타자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타격은 ‘3할의 예술’이다. 10번 타격해서 3번 안타를 때린다면 성공이다. 뛰어난 투수와 10번 상대하면 1~2번 이기기도 힘든 게 타자다. 그래서 난 타자를 믿을 게 못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투박한 표현이었다.
타격은 원래 어려운 것이니 ‘타자가 점수를 뽑아주면 고마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으로서 “타자는 못 믿는다”고 말할 게 아니라 “타격은 어렵다”고 말했어야 했다. 내 말에 서운함을 느낀 타자들이 있다면, 이 기회에 사과의 뜻을 전한다.
이제 난 타자들을 믿는다. 투구 스피드가 빨라지고, 변화구가 다양해졌는데도 타자들은 곧잘 대응하고 있다. 타자들의 체격과 기술도 좋아졌다. 게다가 그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MLB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선수 시절 이정후(키움)와 강백호(KT) 같은 타자를 상대하지 않은 건 행운이다.
이 얘기를 길게 설명한 이유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프로야구 팀을 이끌면서, 국가대표팀을 지휘할 때 나는 투수 파트에 집중했다. 타격은 전문 코치에게 맡기는 게 옳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대신 타자들을 이해하고 응원하기 위해서는 나도 공부해야 한다. 윌리엄스의 말대로 타격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기술이기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