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팀의 이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팀 명은 곧 팀의 정체성이다. 국내 프로 스포츠팀 이름에는 주로 모기업의 상호가 들어간다. 이에 반해 유럽의 축구 클럽은 다양한 이유로 팀의 이름이 정해졌다. 이러한 팀 명칭은 팀의 역사·문화·종교·지리적 기반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럽 축구팀 이름에도 기업 상호가 들어가는 특별한 경우가 있다. 회사 이름이 클럽의 명칭에 들어간 건 기업의 후원을 받는 웍스팀(works team)에서 유래했다. 웍스팀은 회사 구성원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주로 직원들이 팀에서 선수로 뛰었다. 기업 이름이 명칭에 들어간 대표적인 팀은 네덜란드의 명문 클럽 PSV 에인트호번이다.
필립스는 1913년 자사 직원들을 위해 PSV 축구팀을 창단했다. 당시에는 필립스사의 직원만이 클럽에서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 PSV는 Philips Sport Vereniging의 약자로 ‘필립스 스포츠 클럽’이란 뜻이다. 필립스는 PSV를 이용해 자사가 개발한 신제품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마케팅 활동도 병행했다. 예를 들어 1958년 개발한 조명등을 야간경기를 위해 축구장에 설치했다. PSV의 홈구장 이름도 필립스 스타디움으로 명명되었다.
PSV는 2016년 필립스와 셔츠 스폰서십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에 대해 필립스는 "앞으로 회사가 가전업체에서 의료기기 분야로 나아가기 위한 정책적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필립스는 에인트호번과 셔츠 스폰서십 관계를 끝냈지만, 파트너로 남아 계속해서 PSV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계획이다
기업상호가 들어간 또 하나의 유명 클럽이 있다. 아스피린 제조사로 유명한 독일 바이엘(Bayer) 소유의 레버쿠젠이다. 1904년 바이엘사의 한 직원은 동료 170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 스포츠 클럽 창설을 도와달라는 편지를 사장에게 보냈다. 이 요청에 화답한 바이엘은 본사가 있는 레버쿠젠에 여러 스포츠를 담당하는 클럽을 창설했다. 훗날 클럽 내에서 독립적인 축구조직이 생겨났다.
노동자 계급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 독일의 다른 클럽들과 달리 레버쿠젠은 가정 친화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재정적으로도 튼튼한 클럽이다. 일부 축구팬들은 바이엘 레버쿠젠을 부유한 제약회사 덕분에 존재하는 팀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또한 전통과 열성 팬이 존재하는 않는 ‘커머셜 클럽’으로 깎아내리는 경향도 있다.
‘VfL 볼프스부르크’도 많이 알려진 웍스팀이다. 이 팀은 자동차 메이커인 폭스바겐의 직원들을 위해 만들어진 스포츠 클럽이었다. 나치 정권에 의해 탄생된 폭스바겐은 1938년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에 공장 노동자들을 위하여 거처를 제공했다. 여기서 폭스바겐 명칭이 들어간 축구클럽이 탄생했고,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1945년 VSK 볼프스부르크라는 팀이 생겼다. VfL 볼프스부르크의 전신이었다. 볼프스부르크는 모회사인 폭스바겐을 클럽명에 새기고 있지 않으나, 유럽을 대표하는 웍스팀이다.
프랑스 클럽 FC 소쇼 몽벨리아르도 비슷한 사례다. 자동차회사 푸조(Peugeot)는 1928년 직원들을 위해 자사의 근거지인 소쇼에서 FC 소쇼를 만들었다. 후에 이 팀은 지역 라이벌인 몽벨리아르와 합쳐져 현재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외에도 독일 프로축구의 FC 칼 자이스 예나는 유명한 광학기기 제조사인 칼 자이스(Carl Zeiss)의 직원들이 회사의 후원으로 1903년 설립한 팀이다.
잉글랜드 축구를 대표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날도 웍스팀으로 클럽의 역사를 시작했다. 유나이티드의 전신인 뉴턴 히스LYR FC는 1878년 랭카셔 & 유크셔 철도회사 노동자들에 의해 창단되었다. LYR은 철도회사의 약자로 초창기 클럽 명칭에 회사 상호가 들어갔다. 하지만 1892년 회사로부터 독립하면서 LYR이라는 이니셜은 클럽 이름에서 사라졌다.
1886년 런던의 남쪽 울위치에 있는 군수산업 공장 및 연구소 로얄아스날 노동자들은 다이얼 스퀘어(Dial Square)라는 이름의 축구팀을 만들었다. 이 팀은 곧 로얄아스날로 개명했다. 후에 유한책임회사로 변모하며 연고지 이름을 더해 울위치 아스날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어 20세기 초 북 런던으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현재의 클럽 명칭인 아스날로 변경했다.
잉글랜드 프로 레벨에서 회사 상호를 클럽 이름에 사용하는 경우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몇몇 아마추어와 세미프로 클럽은 아직도 기업명이 들어간 이름을 쓰고 있다.
웍스팀으로 시작한 클럽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팀 명칭에 회사 상호가 들어간 경우도 더러 있다. 에너지 음료 회사인 레드불은 스폰서십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여러 개의 스포츠 클럽을 인수했다. 레드불은 2005년 ‘SV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인수하면서 클럽의 이름, 경영조직과 직원을 바꿨다. 기존 클럽의 역사와 단절을 선언하고 새로운 클럽을 창단한 것이다.
새 클럽은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라고 칭해졌다. 팀을 상징하는 칼라도 기존의 바이올렛에서 레드와 화이트로 변경했다.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팬들은 강하게 저항했으나 반대 운동은 결국 실패했다. 이에 저항에 참여한 팬들은 대안으로 새 클럽을 만들었다.
레드불과 비슷한 케이스도 있다. 프랑스의 식음료 회사인 다논(Danone)은 2007년 기존 클럽들을 합병하고 자사의 미네랄 워터 브랜드인 에비앙(evian)을 붙여, 에비앙 토농가야르 FC라는 이름의 클럽을 창설했다.
그렇다면 유럽축구에도 국내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처럼 스폰서 명칭이 클럽 이름에 들어간 경우가 있을까. 다음 칼럼에서 이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