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내가 죽던 날' 언론배급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가 주연을 맡았다. 김선영, 이상엽, 문정희 등 베테랑 배우들도 조연진에 합류했다. 단편영화 '여고생이다'로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지완 감독의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중심에 선 김혜수를 따라간다. 김혜수가 맡은 역할은 섬의 절벽 끝에서 사라진 소녀 세진(노정의)의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현수. 사건을 추적하며 추리하는 듯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현수는 홀로 남겨진 소녀 세진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세진과 자신의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내 피하지 않는다. 그렇게 좌절과 상처는 아물어간다.
김혜수는 실제로 많은 상처를 안고 있었을 때 이 영화 출연을 결심했다고. 이에 대해 "이 영화를 선택했을 때, 스스로 드러나지 않은 상처와 좌절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갔다"며 "관객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사실은 잘 모르겠다. 저희가 정해놓은 주제나 메시지가 있지만, 사실 그런 건 받아들이는 분들에 따라 다르다. 다만, 누군가 됐든 간에 남들이 모르는 상처나 고통, 절망과 좌절을 겪으면서 살아가지 않나. 특히 요즘처럼 힘에 부치는 시기에 극장 오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는 분들에게 조그만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촬영했다"고 말했다.
김혜수는 분명 이 영화에서 현수를 연기한다. 그러나 또 그는 김혜수이기도 하다. 현수라는 인물에 실제 자신을 투영했다. 마치 극중 현수가 세진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것처럼. 그렇게 진실된 연기가 나왔고, 진정성 있는 위로가 만들어졌다. 이에 김혜수는 "등장 인물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위적인 것들은 최대한 배제했다. 자연스럽게 현수의 내면을 따랐다. 누구나 상처가 있지만 저 역시도 아픈 구석이 있었다. 감독님과 같이 풀어가면서 실제 경험했던 감정 혹은 상황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잠을 못 자는데, 자게 되면 악몽을 꾼다는 내용이다. 실제 1년 정도 그랬다. 배역과 유기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세진에게 손을 내밀어준 무언의 목격자 순천댁 역할을 맡은 이정은은 이보다 더 잘할 수 없을 정도의 내공을 보여준다. 청각 장애인 역할로 표현에 한계가 있었으나 이정은은 이정은이다. 힘껏 내지르지 않아도 관객에게 전달되는 울림은 엄청난 데시벨이다. 이야기의 결정적 키를 쥐고 있는 만큼 이정은이 아니었다면 이만큼의 감동을 만들어낼 순 없었을 터다. "소리가 없는 걸 혹시라도 관객들이 집중해서 볼 수 있을까 걱정했다. 잘 듣고, 잘 반응하려 했던 것이 중요했다"는 이정은은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을 어떻게 연기할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후시에서도 작업을 많이 했다. 힘들게, 낯설게 나오는 소리를 만들려고 했다. 필체를 만드는 일 또한 언어가 없는 순간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역할을 위해 기울인 노력을 설명했다.
세진 역의 노정의는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를 보여준다. 놀라고 좌절하고 또 다른 얼굴로 결말을 맞는다. 이제야 스무살이 됐다는 앳된 얼굴의 배우는 김혜수, 이정은과 만나 놀라운 시너지를 낸다. 노정의는 "쉽지 않은 역할이긴 했다. 당시 실제로 마음의 상처가 컸다. 그 상처를 세진으로 승화해 표현하고 싶었다. 한순간에 모든 걸 잃은 어린 아이의 아픔과 상처를 잘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말미 김혜수와 이정은이 만나는 장면이다. 상처와 좌절을 담은 이 영화에 서서히 희망의 빛이 들어오고 끝내 환히 빛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이 장면을 김혜수 또한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김혜수는 "순천댁이 오고 있었다.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거다. 그런데 순천댁인 이정은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리허설도 아니었다. 한참을 손을 잡고 울었다. 현장에서 처음 경험하는 특별하고 복합적 감정이 들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며 "이 영화 통틀어 가장 소중하고 의미있는 순간이었다. 완성된 장면이 어떻게 전달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끼리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공감하고 연대했던 느낌이었다. 예상치 않은, 소중하고 완벽한 순간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내가 죽던 날'의 포스터는 우중충하게 흐린 날씨의 한 순간을 그렸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세 배우의 표정도 어둡기 그지 없다. 제목까지 '내가 죽던 날'이라니.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왠지 마음이 잘 가지 않는 어렵고 어둡고 우울한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가 죽던 날'의 알맹이는 기대와는 전혀 다르다. 태풍이 지나간 후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바로 그 순간의 희망적 메시지를 담았다. "시나리오를 읽어가면서 내가 꼭 해야할 이야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도 그 시기에 그런 위로가 간절했다"는 김혜수의 말처럼 '내가 죽던 날'은 '내가 죽던 날' 꼭 살아야 하는 간절한 위로를 전한다.
이 위로가 많은 관객에게 전해질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내가 죽던 날'은 오는 12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