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후 첫 포스트시즌을 앞둔 KT가 파격적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플레이오프(PO·5전3승제)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장외 신경전은 이미 펼쳐지고 있다.
정규시즌 2위 KT는 오는 9일 두산과 PO 1차전을 치른다. 이강철(54) KT 감독이 강조하는 건 두 가지다. 일단 체력 회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선수들이 예년보다 더 지쳐있다. 기온이 낮아지면서 부상 위험도 커졌다. 이 때문에 KT는 연습 경기를 하지 않은 채 자율훈련 중이다.
두 번째는 기본기 강화. 이강철 감독은 "단기전에서 실책은 치명적이다. 문제가 있었던 부분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KT는 처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이강철 감독에게 가을 야구는 낯설지 않다. 선수 시절 해태 왕조의 주역이었던 그는 '컨텐더 팀' 키움과 두산에서 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다. 과욕을 경계하고, 순리대로 팀을 이끌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강철 감독은 특별한 '카드'를 준비 중이다. 그는 지난 3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 훈련을 마치고 "가을 야구에 대비해 특별한 타순을 구상 중이다. (4번 타자) 강백호를 1번으로 기용할 계획도 있다"고 전했다.
강백호는 올 시즌 출루율 0.411를 기록했다. 10월 출전한 25경기에서는 0.470였다. 2019시즌도 0.416를 기록하며 이 부문 리그 2위에 올랐다. 단기전에서는 에이스급 투수를 연달아 상대한다. 이강철 감독은 출루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 강백호의 타순 조정을 검토 중이다.
그는 "강백호는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출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강백호를 전진 배치하고 황재균·멜 로하스 주니어·유한준이 중심 타선에 나서면 득점력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강철 감독은 "정규시즌 막판에는 하위 타선이 활발해 1·2번 타자에게 타점 기회가 자주 왔다. 배정대·조용호 등 콘택트 능력이 있는 타자를 7번에 배치, 출루율을 높이면 강백호의 타석에서 (타점) 기회가 올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강철 감독 말대로 강백호가 1번 타자로 나선다면 대량 득점을 기대할 수 있다. 상대 선발투수의 기세를 꺾을 수도 있다. 대신 중심 타선의 파괴력은 다소 떨어질 것이다. 이강철 감독 말대로 '1번 타자 강백호'가 실현될지는 PO 1차전 라인업 카드를 봐야 알 수 있다.
마운드 운영에서도 파격이 나올 수 있다. 외국인 투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 대신 신인 소형준(19)을 1차전 선발로 내세우는 시나리오다. KT가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방안이다.
데스파이네는 15승을 거두며 정규시즌 내내 에이스 역할을 해줬다. 나흘 휴식 뒤 등판이라는 루틴을 철저하게 지켜온 투수다. 10월 30일 한화전 등판 뒤 열흘 동안 휴식을 취한 그의 컨디션이 어떨지 가늠하기 어렵다. 데스파이네는 닷새 이상 휴식 뒤 등판한 9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66으로 부진했다.
반면 소형준은 7월 17일 창원 NC전 등판 뒤 보름 동안 휴식을 취했고, 복귀전이던 8월 1일 수원 SK전에서 6⅔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호투했다. 휴식기를 발판 삼아서 이후 더 좋은 투구를 보여줬다.
페이스도 소형준이 더 좋다. 10월 등판한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16으로 호투했다. 반면 데스파이네는 7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29에 그쳤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과 투구 수를 기록한 투수다. 과부하 우려도 있다.
이강철 감독은 "어떤 상황에 등판하더라도 소형준의 투구는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소형준은 데뷔전이었던 5월 8일 두산전에서 호투하며 개막 3연패에 빠진 KT에 시즌 첫 승을 안겼다. 신인이라고 해서 긴장감 탓에 제 공을 던지지 못할 투수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강력한 외국인 투수 대신 신인을 1차전에 투입하는 것은 큰 모험이다.
'1번 타자 강백호', '1선발 소형준' 모두 미정이다. 이강철 감독은 전력 분석팀의 데이터, 코칭 스태프와 선수 본인의 의견을 두루 참고할 생각이다.
다만 치열한 장외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는 평가다. KT 주축 선수 활용법 변화는 상대 팀 입장에서는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다. 단기전은 모든 가능성을 대비하는 싸움이다. 두산도 4일 LG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선발 자원 최원준을 구원 투수로 투입, LG의 허를 찔렀다. 이강철 감독의 의중이 연막이라고 해도 상대는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