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우가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정근우(38)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은퇴 기자 회견장에 들어섰다. 그는 "(최근 은퇴한 동갑내기) 김태균은 은퇴 기자회견 때 눈물을 흘리던데, 나는 왜 이렇게 눈물이 안 나지?"라며 특유의 입담을 자랑했다.
KBO리그 역대 최고 2루수 정근우가 선수로서 작별 인사를 전했다. 정근우는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뤄 미련이나 후회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2005년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지명으로 SK에 입단한 정근우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2루수로 성장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5년 프리미어12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KBO리그 득점왕 2회, 골든글러브를 3회 수상했다. 리그 최다 끝내기 안타 16회에 역대 최초로 11년 연속 20도루를 올렸다. 통산 1747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2, 1877안타, 121홈런, 722타점, 371도루를 기록했다.
정근우에게 '마지막 1년'은 소중했다. SK와 한화를 거친 그는 2018~19년 포지션 경쟁에서 밀려 외야수와 1루수로 옮겼다. '2루수'라는 자부심이 컸던 그에게 LG가 손을 내밀었다. 지난해 2차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했다. 그는 정주현과의 2루수 경쟁을 펼쳤지만,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는 "2루수로 한 시즌 더 뛸 수 있게 기회를 준 LG에 고맙다"라고 인사했다.
정근우가 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 중 취재진 질의에 웃으며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은퇴 소감은. "프로야구 선수 정근우로 인사를 하는 마지막 자리다. 고려대 재학 때 훈련 중 프로 지명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벌써 16년 세월이 흘렀다. 은퇴 기자회견을 앞두고 어떤 얘기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려 미련이나 후회는 전혀 없다. 그동안 아껴주신 분께 정말 감사드린다. 1~2년 전 포지션을 전향하면서 여러 고민을 했다. LG에서 다시 한번 2루수로 뛸 기회를 주셔서, '2루수 정근우'로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돼 감사하다.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더라. 앞으로 제2의 인생을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다."
-은퇴를 계획한 시기는. "지난 7월 허벅지 부상으로 엔트리에 제외된 뒤 은퇴 계획을 세웠다. 많은 분이 예전의 플레이를 기대하실 텐데, 지금은 그때의 정근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2루수에 대한 애착이 컸다. "김성근 전 한화 감독님이 수비 훈련을 워낙 많이 시키셨다. '악마의 2루수'가 되고자 노력했다. 타구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 못 잡더라도, 옆으로 빠져나가는 타구는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지난 '2015 WBSC 프리미어12' 결승전에서 미국을 8-0으로 누르며 우승을 차지한 야구대표팀. 주장 정근우와 이대호가 경기 후 진행된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은 후 번쩍 치켜들고 있다. IS포토
-가장 좋았던 시절은. "2006년 골든글러브를 처음 수상하고 이후 2017년까지 탄탄대로를 걸었다. SK에서 여러 번 우승했고, 국가대표로 발돋움했다. 한화에서는 홈런과 타점을 많이 보탰다. LG에선 다시 한번 2루수로 뛸 기회를 얻었다. 베이징 올림픽과 프리미어12가 기억이 많이 남는다. 2015년 프리미어12가 국가대표 2루수로 나서는 마지막 대회라는 걸 염두에 두지 못했다. 당시 주장으로서 우승까지 해서 행복했다."
-'은사' 김성근 감독님과 어떤 얘기를 나눴나.
"시즌 종료 후 은퇴 결정에 대해 말씀드렸다. '왜 벌써 그만두느냐'고 하시더라. '이제 은퇴 시기가 온 것 같습니다. 감독님 덕분에 잘 성장했고,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아 감사드린다'라고 인사했다."
-LG에서 함께 은퇴한 박용택과 어떤 얘기를 나눴나.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이 용택이 형과 내게는 마지막 경기였다. 그래서 이닝이 지날수록 (팀이 지고 있어) 불안했고, 아쉬웠다. 경기 끝나고 껴안으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라며 서로 응원했다. 나는 시즌 중 은퇴를 결심했지만, 용택이 형이 한창 '은퇴 투어' 중이어서 누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됐다. 시즌 막판에는 팀이 치열한 순위 다툼이어서 발표할 수 없었다."
-1982년 동기(이대호, 오승환, 김태균)들도 하나둘씩 은퇴한다. "유니폼을 벗은 친구도 있고, 앞으로 계속 뛸 친구들도 있다. 정말 대단하고 존경한다.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서로 지고 싶지 않아서 경쟁했고, 대표팀에서 성과도 이뤘다. 고맙다."
-은퇴를 결정하고 가족의 반응은.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니 애들 셋(아들 2명, 딸 1명)이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라고 큰절을 하더라. 그동안 묵묵히 뒤에서 뒷바라지한 아내(홍은숙씨)는 '지금까지 당신이 뛴 매 경기가 감동이었다. 고맙고, 수고했다'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누나가 지원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도 감사하다."
-아들이 야구를 하겠다고 하면. "첫째 아들은 야구를 하고 있다. 나는 어릴 때 야구에 너무 얽매였다. 아들은 즐겁게 뛰면서 좋은 선수가 됐으면 한다. 그동안 외야수로 뛰었는데, 최근에 내야로 옮겼다. '아빠의 기록은 도루든 뭐든 다 뛰어넘겠다'라고 하더라."
-현역 시절 악바리 근성이 돋보였다. "경쟁에서 지기 싫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최근에도 집에서 내가 스윙을 하고 있더라.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천천히 하나씩 내려놓겠다."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고교 때 한 번, 대학 때 한 번, 그리고 프로에서 세 차례 입스(송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가 왔다. 팔꿈치 수술만 세 번 했다. 특히 고교 시절에는 의사가 '더는 이런 팔 상태로 야구를 할 수 없다'라고 경고했다. 그럼 '왼팔로라도 야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수술이 잘됐다. 그때 포기를 하지 않아서 지금의 정근우가 있었던 것 같다. 김성근 감독님을 만나 새벽부터 저녁까지 많은 훈련을 받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키(173㎝)가 작아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얼마 전 식당에서 우연히 KBO리그 최단신 김지찬(삼성·163㎝)을 만났다. '내가 네 팬이야'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더라. 지난해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에서 김지찬의 플레이를 모두 봤다. '키가 작아도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 대신 수비와 도루 등을 더 열심히 해 장점을 극대화하면 좋겠다'라고 조언했다."
-2루수의 매력은. "베이스 커버나 더블 플레이, 작전 등 움직임이 필요하다. 또 역동작으로 타구를 처리할 때가 많다. 돌이켜보면 정말 잘해온 것 같다. 특히 SK에서, 항상 꿈꿔온 박진만 선배와 키스톤 콤비를 이뤄 정말 좋았다."
-'야구 선수 정근우'에게 한마디 한다면.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았던 소년이다. 그래서 이를 뛰어넘으려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힘들고 지칠 때 포기하지 않고 이겨낸 내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향후 계획은.
"이제부터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뒷바라지해 준 가족이 있다. 좋은 가장, 좋은 아빠가 되고자 고민하며 결정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