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K바이오] AI 플랫폼 선구자 박혜진 에이조스바이오 연구소장 "소설 같은 얘기? 이걸 깨는 게 과학자"
등록2020.11.13 07:00
아조트(Azoth)는 고대 연금술에서 나오는 수은과 같은 만능 약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명을 가져온 에이조스바이오(Azothbio)는 인류를 위한 만능 약을 만들어내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출발했다. ‘인공지능(AI) 신약 개발’이라는 새로운 영역 개척을 위해 도전장을 던진 에이조스바이오. AI 신약 개발 플랫폼을 주도하는 연구소장인 박혜진 박사(수석연구원)를 지난 9일 에이조스바이오의 서울 송파 사무실에서 만났다.
AiMol 딥러닝, 수천만 물질 중 최적 데이터 도출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신약 개발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AI가 신약 개발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아직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원들 사이에서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경향도 없진 않다. 하지만 일본제약공업협회는 AI를 신약 개발에 적용하면 평균 10년 걸리던 개발 기간이 3~4년으로 최대 70% 감축되고, 평균 1조2200억원 들던 비용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하며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에이조스바이오의 박혜진 박사는 국내에서 AI 신약 개발 플랫폼의 선구자로 꼽힌다. 신재민 에이조스바이오 대표의 ‘영혼의 단짝’으로 불리는 그는 AI 플랫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AI 플랫폼을 통하면 수천만 개 물질의 분석도 하루 이내 가능하다. 실전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탐색 과정을 한 달 내 끝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신약 개발 초기인 탐색 단계에서 선도물질(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하는 데만 보통 수년이 걸린다. 기존 방식으로는 수십 명이 수년간 분석해야 하는 초기 탐색 과정이지만 AI 플랫폼을 활용하면 이런 탐색 시간을 한 달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박 박사는 “논문에서만 나오는 물질은 실용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유사 화학물질만 찾는 것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물론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물질 탐색에 사용하는 상용화된 기존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있다. 에이조스바이오의 신 대표가 15년간 파고들었던 분야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 대표는 AI 신약 개발 플랫폼의 효율성에 감탄하며 기존 방식을 과감히 접었다고 한다. 박 박사 역시 “딥러닝 AI 플랫폼으로 전략적 선도물질을 제시할 수 있다. 탐색을 위한 전략 제시가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에이조스바이오의 자체 AI 플랫폼인 'AiMol'은 바이오 빅데이터 프로그램이다. 박 박사는 기존 상용화 프로그램과 비교해 에이조스바이오가 가진 강점을 명확히 설명했다. “기존 프로그램은 유사 물질을 찾을 뿐이지 새로운 생성물질을 찾아내진 못한다. 2개 화학물을 수학적으로 조합해 실제로 적용이 가능한 물질을 제시하기 위해 이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경험을 가진 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에이조스바이오는 이런 개발 인력의 역량이 가장 뛰어나다.”
1년, 3라운드 내 검증, 파트너 실패 비용 줄이기
AI 신약 개발 플랫폼은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개발 성공률은 높여야 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초기 탐색 과정에서 적합하지 않은 물질이 도출된다면 시간과 비용의 피해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에이조스바이오의 명확한 기준도 매력적이다.
박 박사는 “신약 개발의 실패 비용을 줄이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다. 만약 적합한 물질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빠르게 포기해야 한다”며 “그래서 파트너사에 한 프로젝트에 최대 1년, 3라운드 검증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1년 내 3차례의 면밀한 검증 과정을 통해 최적의 물질을 찾지 못한다면 파트너사가 경영적 판단을 빨리할 수 있게 다른 방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AI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에 가능한 계약 조건이기도 하다.
에이조스바이오는 AI 플랫폼을 다루는 인력만 7명이고, 국가과제 수행들 프로젝트 경험이 풍부한 연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분자설계연구소, 고등과학원 인실리코 단백질 과학센터를 거친 박 박사는 한국인 표준 게놈지도 작성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CJ헬스케어와 함께 이중 표적 항암제 유효물질 발굴한 신테카바이오에서도 박 박사와 신 대표가 AI 플랫폼의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박 박사는 “한국인 표준 유전체를 제정하는 국가과제 수행을 통해 단순 연구가 아니라 실제 적용이 가능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항암 발굴 프로젝트 등의 경험들이 지금의 AI 플랫폼 구축의 토대가 됐다. 데이터만으로 결코 신약 개발이 가능하지 않아 딥러닝 모델을 만들게 됐다”며 AI 플랫폼에 뛰어든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AiMol 구동으로 두 개의 화학물을 넣어 탐색을 시작하자 유효한 값이 순식간에 나왔다. 박 박사는 “2015년 설립된 에이조스바이오의 AI 플랫폼 기술력은 단연 국내 1위라고 자부한다. AI 플랫폼 기업이라고 하지만 신약 개발에 대해 잘 모르는 회사가 많다”며 “에이조스바이오는 파트너사와 5건의 계약을 맺었고, 자체 신약 개발 건도 3개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문적인 경험 보유를 강조했다.
제약바이오협회도 신약 개발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AI 플랫폼 구축에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인력 부족 등으로 AI 플랫폼 구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찐 과학자’의 끝없는 도전
에이조스바이오는 AI 플랫폼을 활용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는 면역 활성을 유도하는 펩타이드 물질에 대한 국내외 특허도 출원한 상태다. 에이조스바이오의 항원결정기 예측 모델은 펩타이드 서열을 딥러닝 기법으로 풀어냈다. 박 박사는 “기존 모델들은 AI 트레이닝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딥러닝 항원결정기는 단순히 데이터를 넣는 게 아니라 기존에 없던 염기 서열을 넣어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얻는 방식이다”고 말했다. 에이조스바이오는 중국 파트너사와 코로나 치료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AI 신약 개발 플랫폼은 현재 과도기를 걷고 있다. IT 기업들의 경쟁에서 그랬듯이 4차 산업 역시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가 중요하다. 박 박사는 “국내에도 우리를 포함해 스탠다임 등 20개 넘는 AI 신약 개발 바이오기업이 있다. 자본이 풍부하고 새로운 기술에 호의적인 생태계를 가진 미국에 비해 불리한 상황인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개척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에이조스바이오가 선구자 역할을 하겠다”고 다부진 의지를 드러냈다.
에이조스바이오의 목표는 신약 개발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AI 바이오기업이 되는 것이다. 이르면 3년 내 의료산업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AI 신약 개발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이다. 박 박사는 “‘이게 정말 돼’라는 회의적인 시선과 고정관념을 깨는 게 과학자의 진정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며 학구파적인 옅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