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국은 9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추억이 있고, 아픔도 있는 그라운드를 떠난다.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스스로 버티지 못해 내려놔야겠다고 결정했다. 지금이 가장 적당한 시기다. 제주가 우승했고, 박수를 받으면서 떠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은퇴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2003년 19세의 나이로 안양 LG(현 FC 서울)에 입단했다. 그해 12골을 넣으며 신인왕을 차지한 정조국은 이후 K리그의 대표 공격수로 성장했다. 2016년 광주 FC로 이적한 뒤 득점왕(20골)에 올랐고, 최우수선수상(MVP)도 받았다.
신인상, 득점왕, MVP까지 모두 거머쥔 이는 K리그 역사에서 단 세 명뿐이다. 신태용, 이동국, 그리고 정조국이다. 혜성처럼 등장해 18년 동안 K리그 그라운드를 누빈 그는 392경기에서 통산 121골을 넣었다. 역대 19위의 출전횟수에 역대 5위의 득점 기록이다. K리그의 전설로 평가받을 만하다.
2020시즌 K리그2(2부리그) 제주 유나이티드를 우승시키며 K리그1(1부리그) 승격에 힘을 보탠 정조국은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했다.
정조국은 "가장 뜻깊은 경기는 프로 데뷔전, 전남 드래곤즈 원정이었다. 19세였던 난 프로에서도 잘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마추어라는 걸 깨달았다. 프로는 정말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때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은 K리그 데뷔골이다. 데뷔 후 10경기 넘게 골을 넣지 못했다. 그러다 부천 SK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성공했다. 이후 탄력을 받아 12골까지 넣었다. 의미가 큰 골"이라고 회상했다.
K리그 챔피언에 올랐고, 주요 개인상도 다 받아본 그에게도 아쉬움이 있다.
정조국은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해 아쉽다. 많은 골을 넣었지만, 많은 찬스도 놓쳤다. 내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K리그에서 위기도 있었다. 그는 2015년 서울을 떠나야 했고, 2016시즌을 앞두고 광주로 이적했다.
정조국은 "정말 힘든 시기였다. 서울을 떠날지 말지 고민이 컸다. 나에게 서울은 첫사랑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해 광주를 선택했다"며 "정말 모든 걸 쏟아부었다. 쫓기지 않으려 노력했고, 부담감을 내려놓고 뛰어서 해피엔딩이 될 수 있었다. 광주에서 잘하지 못했다면 조용히 선수생활을 끝냈을 것이다. 모든 업적이 무너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은 조광래 대구 FC 대표이사라고 한다. 정조국이 신인 때 감독이 조광래 대표였다.
그는 "천방지축이었던 날 프로로 만들어준 분이 조광래 감독님이다. 나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다. 믿고 기다려주지 않았다면, 따끔하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고백했다.
K리그에서 모든 걸 다 이룬 정조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청소년대표팀 시절 한국 최고의 유망주로 엄청난 기대를 받았던 그였지만, 성인 A대표팀에는 13경기에 출전해 4골에 그쳤다. 월드컵이나 아시안컵을 경험하지 못했다.
정조국은 "축구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건 월드컵에 나가지 못한 것이다. 변명일 수 있겠지만 모든 상황이 꼬였다. 대표팀 선발 때 부상을 당했고, 대표팀 스태프가 K리그 날 보러오면 경기를 망쳤다. 이런 상황이 매우 많았다. 자만도 했다. 아쉽지만 이 또한 내가 감내할 일"이라고 털어놨다.
그래도 정조국은 행복한 축구 인생을 살았다. 특히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축구 선수였다. 존경받는 남편이자 아빠였다. 가족 이야기를 꺼낼 때 정조국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선택은 결혼이다. 아내는 나의 가장 큰 팬이었다.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며 "첫째 아이는 아빠가 수고했다고 생각한다. 둘째도 너무 좋아했다. 셋째는 내가 축구 하는 걸 보지 못해 아쉽지만,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인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조국의 다음 목표는 감독이다. 그는 지도자가 되어 '조국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다.
정조국은 "축구 선수 정조국은 떠나지만,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잘할 자신 있다. 멋지게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나의 가장 큰 꿈은 선수로서 나가지 못한 월드컵을 지도자로 나가는 것이다. 그동안 겪은 경험과 착오 등을 바탕으로 준비할 생각이다.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