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선방쇼를 펼치며 결승행을 이끈 울산 조수혁. [사진 프로축구연맹]프로축구 울산 현대가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랐다. ‘준비된 방패’ 조수혁(33)이 뒷문을 든든히 지켜준 덕분에, 2012년 이후 8년 만의 아시아 정상 정복에 대한 기대감이 넘친다. 울산은 13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대회 준결승전에서 연장 끝에 빗셀 고베(일본)를 2-1로 물리쳤다. 19일 열리는 결승전에서는 페르세폴리스(이란)와 맞붙는다.
1무승부를 안고 카타르에 건너온 울산은 파죽의 8연승을 달렸다. 울산의 상승세를 설명할 때 ‘백업 골키퍼’ 조수혁을 빼놓을 수 없다. 당초 국가대표 조현우(28)가 울산 수문장으로 나설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축구대표팀 유럽 원정에 참여했던 조현우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조수혁에게 기회가 열렸다.
조수혁은 ‘이인자’ 이미지가 강하다. 2017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울산으로 이적한 뒤 김용대(은퇴), 오승훈(제주), 김승규(가시와 레이솔), 조현우 등 ‘넘버원’에 밀려 줄곧 백업 역할에 그쳤다. 카타르에 오기 전까지 지난 2년간 3경기 출장이 전부다.
벤치를 지키는 신세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일지 모를 기회를 기다리며 훈련했고 다른 선수의 훈련 파트너 역할을 마다치 않았다. 그러한 숨은 노력은 이번 대회에 빛을 발했다. 조수혁은 울산이 치른 8경기 중 7경기에서 골문을 지켰다. 5실점. 경기당 1점을 내주지 않았다. 여러 차례 수퍼 세이브로 실점과 패배를 막았다.
김범수 울산 골키퍼 코치는 “고베전 후 라커룸에 들어오는 (조)수혁이에게 ‘고맙다’고 했더니 씩 웃더라. 골키퍼는 단 한 명만 경기에 나선다. 주전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일인자와 이인자의 간극이 가장 큰 포지션이다. 수혁이가 오랜 벤치 생활에도 꾸준히 몸을 만든 덕분에 최고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칭찬했다.
조수혁은 선수단의 활력소 역할도 맡고 있다. 쾌활한 성격으로 라커룸 분위기를 띄우는 ‘해피 바이러스’다. 자신의 5년 후배인데도 주전 골키퍼인 조현우와 매일 출퇴근을 함께하며 형제처럼 지낸다. 다른 포지션 후배도 살뜰하게 챙긴다. 조수혁은 “(조)현우는 후배지만, 우리 팀의 주전 수문장이다. 나보다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인 만큼, 조언을 들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수혁은 지난해부터는 프로축구 선수의 일상을 담담히 풀어내는 유튜브 채널 ‘베리나히쑤’를 운영 중이다. 애견 베리와 아내 김희경씨, 자신의 이름에서 글자를 따 조합해 지은 이름이다. 일부 사생활과 취미, 운동 방법 등 팬들 궁금증을 풀어주는데, 홈팬을 중심으로 구독자가 늘고 있다. 엄지와 검지를 V자로 벌리는 포즈를 영상에서 종종 취하는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는 “스트레스를 풀고, 팬과 소통할 방법을 찾다가 유튜브를 떠올렸다”고 소개했다.
최근 ‘베리나히쑤’는 개점휴업 상태다. 울산이 K리그 막판 치열한 순위싸움과 축구협회(FA)컵 우승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또 챔피언스리그를 위한 훈련에 전념하기 위한 것도 한 이유다.
아시아 챔피언이 되면 울산은 영예뿐만 아니라 거액의 상금도 거머쥔다. 결승 진출로 일단 준우승팀이 받는 250만 달러(27억원)는 확보했다. 우승할 경우 550만 달러(66억원)를 받는다. 내년 2월 카타르에서 열릴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출전하면 천문학적인 참가 수당이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