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MLB) 구단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지난 15일(한국시간) 인종차별 논란이 있는 구단명 '인디언스'를 교체하겠다고 발표했다. 폴 돌란 클리블랜드 구단주는 "우리의 역할은 지역사회 통합"이라며 "많은 사람이 상처 받고, 분열을 초래하는 이름(인디언스)을 고수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클리블랜드는 1915년부터 '인디언스'라는 구단명을 사용했다. 최초의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야구 선수 루이스 소칼렉시스(1871~1913년)를 기리는 의미가 있었다. 강인하고 용맹한 이미지를 투영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점차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을 모욕하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1948년부터 등장한 팀 로고 '와후 추장'에 대한 논란이 컸다. 처음에 노란색이었던 로고 색깔은 1951년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인디언을 비하하는 표현 홍인종(Red Skin)을 이미지화한 꼴이었다.
수많은 시민단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클리블랜드의 구단명과 로고 교체를 요구했다. 그러나 구단은 '와후 추장'에 애착을 가진 팬이 많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2010년 5월, 미국 정부가 인디언에 대한 폭력 행위와 잘못된 정책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구단의 인식이 달라질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이때도 구단은 어물쩍 넘어갔다. 2011년부터 '와후 추장' 대신 영문 대문자 'C'가 새겨진 모자나 헬멧을 착용하는 빈도를 높였다. 그래도 유니폼 상의 왼 어깨에 붙은 '와후 추장' 로고를 떼지 않았다. 이 로고가 새겨진 상품도 계속 판매했다.
논란은 이어졌다. 2016년 포스트시즌에는 클리블랜드 홈구장(프로그레시브 필드) 한구석에서 '와후 추장' 사용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붉은 페이스 페인팅에 깃털로 머리를 장식한 백인 관중들은 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롭 만프레드 MLB 커미셔너까지 나서 돌란 구단주를 압박했다. MLB 사무국은 2018년 1월 "2019시즌부터 로고를 사용하지 않기로 클리블랜드 구단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와후 추장'이 70년 만에 '은퇴'한 것이다.
클리블랜드가 '인디언스'까지 포기한 건 외부 압력이 아니라 내부 결단 때문이었다. 계기는 플로이드 사건이다. 지난 5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질식사한 사건으로 인해 미국 내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만큼 큰 이슈다.
돌란 클리블랜드 구단주는 이 사건을 계기로 조직 전반을 재정비했다. 인디언스라는 구단명을 인종차별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진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결국 인종차별의 남은 불씨였던 '인디언스'를 포기했다. 구단명 교체를 지지하지 않는 일부 클리블랜드팬을 향해 "스포츠팀이 지역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을 이해해달라"는 메시지도 전했다.
앞서 미국 프로 미국프로풋볼(NFL) 소속 워싱턴 레드스킨스도 구단명과 로고를 버렸다. 레드스킨스도 수십 년 동안 인디언 비하 논란을 야기한 팀이다. MLB 클리블랜드의 와후 추장 로고가 애니메이션 캐릭터였다면, 레드스킨스의 로고는 더 노골적으로 인디언을 형상화했다. 피부색을 지칭한 구단명도 문제였다.
2013년 10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워싱턴 구단에 팀명 교체를 권고하기도 했다. 당시 댄 스나이더 구단주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이 워싱턴 관련 상품 판매를 중단했고, 메이저 스폰서십 업체 페덱스까지 구단명 교체를 요구하며 압박했다. 결국 7월 13일 워싱턴은 구단명과 로고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2020~21시즌 그들은 구단명 없이 '워싱턴 풋볼팀'으로 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MLB 클리블랜드, NFL 워싱턴 모두 고집을 꺾었다. 사회적 파급력이 큰 스포츠 구단들이 잇달아 변화를 향해 한 발을 내디딘 점은 긍정적인 신호로 여겨진다. 인디언 단체들도 구단들의 행보를 반겼다.
미국 사회에서의 여전한 인종차별, 그리고 강해진 저항은 오랜 전통을 허물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플레이어 르브론 제임스는 플로이드 사건 때 온·오프라인을 통해 적극적으로 인종차별 현실을 강조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샬럿 호네츠 구단주도 지난 6월 "유색 인종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이들과 함께하겠다"며 인종차별 철폐와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10년 동안 1억 달러(1095억원)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자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는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US오픈 테니스대회에서 인종차별로 숨진 흑인 피해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나섰다.
단체 종목 선수들은 경기 전 국가가 흘러나오면 한쪽 무릎을 꿇고 인종차별 반대 메시지를 전했다. MLB 정규시즌, NBA 플레이오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스탠리컵 플레이오프 중에는 선수들이 경기 보이콧을 하기도 했다.
지난 9월 개막한 미국 최고 인기 리그 NFL도 예년과 다른 풍경이다. 지난 2018년 NFL 사무국은 선수들이 한쪽 무릎을 꿇는 행위를 금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강력하게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로이드 사건 뒤 달라졌다. 로저 구델 NFL 커미셔너는 "모든 선수가 (인종 차별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고, 평화롭게 시위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9월 10일 열린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휴스턴 텍슨스의 개막전에서는 휴스턴 선수들이 미국 국가 끝날 때까지 필드로 나서지 않았다. 두 팀 선수들은 팔짱을 끼고 한동안 침묵했다. 스포츠맨들이 인종차별 악습의 뿌리를 거세게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