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정이삭 감독)'의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를 둘러싸고, 인종 차별 문제가 미국 현지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미나리'가 2021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됐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진 후 "인종 차별적 행태"라는 분노가 터져나오고 있다. 룰루 웡 감독 등이 개인 SNS를 통해 비판했고, 버라이어티·인디와이어 등이 이를 문제 삼은 보도를 이어갔다. 26일(현지시간) 방송된 미국 ABC 방송사의 간판 아침 프로그램 '굿모닝 아메리카'에서도 집중 보도됐다.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 땅으로 이민을 선택한 한국인 가족의 따뜻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 자전적 이야기를 작품에 담은 정이삭 감독은 리 아이작 정이라는 이름의 미국인이다.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 플랜B가 제작을 담당했으며, 다양한 아카데미 수상작을 만들어낸 A24가 배급을 맡았다. 윤여정과 한예리를 제외하고는 미국 국적의 배우가 출연한다.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이 주인공이며, 이들이 한국어를 한다는 것 이외에는 모두 '미국적'이다. 한국계 이민자의 삶을 담았다는 것 또한 미국 역사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골든글로브를 주최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미나리'를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하고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렸다. 영어가 아닌 언어가 50% 이상인 작품을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분류한다는 기준에 따른 결정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HFPA는 앞서 독일어와 프랑스어 대사가 대부분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이탈리아어 대사가 많이 등장하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을 작품상 후보에 올린 바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은 되고, 정이삭 감독의 작품은 안 되는 이중적 행태를 보여준 것. 이를 두고 베트남계 미국인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은 "만약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유대어 대사로 이뤄진 유대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그는 이 영화가 미국적이라고 HFPA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중국계 미국인 감독 룰루 왕이 만든 영화 '페어웰'이 뉴욕에 사는 중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대사 대부분이 중국어라는 이유로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이번 '미나리' 사태에 룰루 왕 감독은 "나는 올해 '미나리'보다 더 미국적인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인 동시에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는 이야기"라면서 "영어만 사용해야 한다는 낡은 규정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대다수의 현지 언론과 관계자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버라이어티는 "'미나리'는 그 어떤 작품보다 미국적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중국계 캐나다인 배우 시무 리우는 "'미나리'는 미국에서 촬영하고 미국인이 출연하고 미국 회사가 제작한 영화"라고 밝혔고, 한국계 미국인 배우 대니얼 대 킴은 "미국이 내 나라인데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와 같다"라고 했다.
'미나리' 차별 이슈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극찬 받으며 수상 행진을 이어오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시작으로 LA비평가협회 여우조연상(윤여정), 보스턴비평가협회 여우조연상(윤여정)과 음악상, 미들버그 영화제 앙상블 어워드, 덴버 영화제 관객상과 최우수연기상(스티븐 연), 선셋필름서클어워즈 여우조연상(윤여정), 플리로다비평가협회 각본상(정이삭 감독) 등을 휩쓸었다. 이처럼 많은 상을 받으며 아카데미 진출까지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오스카 전초전이라는 골든글로브에서 '미나리'가 제대로 평가받을 자격을 빼앗아간 셈이다.
아직 골든글로브 후보가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내년 2월28일 열리며, 후보는 같은 달 3일 발표된다. 또한, 이번 이슈로 아카데미의 선택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내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 발표는 2021년 3월 15일이며, 시상식은 4월 25일에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