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튼의 서포터스들이 응원하고 있는 모습 2020~21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속한 20개 팀 중에 알비언(Albion)이란 이름을 가진 클럽이 2개 있다. 브라이튼 앤 호브(Brighton & Hove) 알비언과 웨스트 브로미치(West Bromwich) 알비언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을 포함해 잉글랜드, 웨일즈와 스코틀랜드에 알비언이란 이름이 들어간 축구 클럽은 10개나 된다. 심지어 남미의 우루과이와 호주에도 알비언이란 명칭이 들어간 클럽이 있다.
알비언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국내의 많은 팬들이 한번 정도는 궁금해할 이름 알비언에 대해 알아보자.
영국은 섬나라이다.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 외지인이 영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수밖에 없었다.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둔 영국과 프랑스의 최단 거리는 33.3㎞에 불과하다. 부산과 대마도의 거리(49.5㎞)보다 훨씬 가깝다. 날이 맑으면 육안으로 영국에서 프랑스를, 프랑스에서 영국을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외부인들이 영국을 방문하거나 침범할 때 주로 도버 해협을 이용했다. 이들이 바다를 건너 영국으로 건너올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바로 항구 도시 도버에 위치한 거대한 백악 절벽이다. 영국을 상징하는 이 절벽은 최대 110m 높이에 길이는 13㎞에 달한다. 따라서 잉글랜드를 침공하는 외부인들은 이 나라를 방어하는 것 같은 요새 같은 거대한 암벽에서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알비언이라는 영어 단어는 ‘하얀 절벽’을 암시하는 라틴어 ‘알부스(alb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잉글랜드를 가리키는 옛 명칭이 바로 알비언이다. 때로는 알비언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지역을 아우르는 섬 브리튼(Britain)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 영어에서는 영국을 시적으로 묘사할 때 알비언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아울러 영국인들은 한때 새로운 알비언(New Albion)이라는 이름을 캐나다, 호주의 시드니와 미국의 캘리포니아를 부르는 명칭으로 사용한 적도 있었다.
지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영국에서 알비언이란 명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축구팀은 브라이튼 앤 호브(호브는 브라이튼의 이웃 도시)다. 잉글랜드의 유명한 휴양도시 브라이튼 근교에 위치한 세븐 시스터스(Seven Sisters)라는 명소 때문이다. 한국어로 ‘칠자매’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바닷가에 위치한 흰색 암벽을 가리킨다. 일곱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절벽이라 이러한 이름이 붙었고, 각각의 봉우리에도 고유의 이름이 있다.
도버의 백악 절벽(White Cliffs of Dover)의 모습. 2차 세계대전 당시 30만이 넘는 연합군이 프랑스령 덩케르크에서 독일군의 포위망을 뚫고 극적으로 탈출한 유명한 실화가 있었다. 당시 도버 해협을 건너 탈출한 연합군들에게 도버의 백악 절벽은 희망의 상징이었다. 도버의 백악 절벽은 지나친 개발과 이로 인한 보호로 인해 식물로 뒤덮여 절벽이 푸르게 변한 곳이 꽤 있다. 하지만 세븐 시스터스의 암벽은 사람의 손때가 덜 묻어 흰색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따라서 이곳은 TV나 영화 촬영 등에서 도버 암벽을 대신해 사용되기도 한다.
브라이튼에서는 매년 8월 동성애자들의 카니발이 열린다. 상당한 규모의 LGBT(성적소수자) 커뮤니티가 이곳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브라이튼은 영국의 동성애자들의 수도(the gay capital of Britain)로 알려져 있다. 브라이튼과의 경기가 벌어질 때 상대방 팀의 팬들은 동성연애를 조롱하는 구호를 연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팝 그룹 아바(ABBA)의 히트곡이자 뮤지컬 ‘맘마미아’의 수록곡으로 많이 알려진 ‘Does Your Mother Know’를 개사해 ‘Does your boyfriend know you're here(남자친구가 너 여기 있는 것 알아)’라는 구호를 상대 팬들이 외칠 때가 있다.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야유는 영국 축구 문화의 일부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브라이튼의 팬들은 ‘You're too ugly to be gay(넌 너무 못생겨서 게이가 될 수 없어)’라고 응수하기도 한다.
알비언이란 이름을 최초로 도입한 클럽은 잉글랜드의 웨스트 미들랜드 지역에 위치한 웨스트 브로미치(WBA)다. 세계 최초의 프로 축구리그인 ‘풋볼 리그’가 1888년 창설될 때 참가한 클럽은 12개였는데, WBA도 이 리그에 속한 원년 멤버였다.
웨스트 브로미치 소속의 김두현이 2008년 QPR를 상대로 골을 기록한 후 기뻐하고 있는 모습. 웨스트 브로미치는 이 경기 승리로 인해 2부리그 우승을 확정했고, 2008~09시즌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다. WBA와 관련해 흥미로운 뉴스도 있었다. 2002년 BBC의 보도에 의하면, 영국 전역에서 10만 명이 참가한 IQ 테스트에서 영국 남자와 여자의 평균 점수는 각각 111과 104로 나왔다고 한다. 축구 팬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WBA 서포터스들의 평균 IQ가 무려 138로 나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번리(Burnley) 팬들의 평균 IQ는 76에 그쳤다고 한다. 동물과 인간의 IQ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지만, 흔히 문어의 IQ가 73정도라고 한다.
WBA 서포터스들은 2002~03시즌 EPL 최고의 팬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울러 이 클럽은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을 비롯해 다수의 유명인을 팬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2016년 WBA는 중국인 사업가에 팔렸다. 현재 EPL에 속한 클럽 중 사우스 햄튼, 울버햄튼과 WBA의 구단주가 중국인이다.
우루과이에도 알비언이란 이름을 가진 클럽이 있다는 걸 의아하게 생각할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 위치한 알비언 FC는 영국 고등학생들에 의해 1891년 창단된 클럽이다. 우루과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이 클럽은 현재 2부 리그에 속해 있다. 참고로 1930년 제1회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이 열린 장소와 우승팀이 바로 우루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