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탑의 말 한마디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걱정과 희망, 선수들을 향한 메시지가 있다. 감독의 야구관이나 개성도 엿보인다. 일간스포츠는 KBO리그 감독이 남긴 코멘트를 통해 10개 구단의 2020년을 돌아봤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
최원호 한화 전 감독대행=12월 8일 열린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시상식에서 지도자상을 받은 뒤 남긴 말. 그는 올해 정규시즌 114경기를 지휘하며 역대 한 시즌 최장 기간(145일) 임시 사령탑 기록을 세운 뒤 2군 감독으로 돌아갔다. 최하위 탈출에는 실패했지만, 최원호 감독대행은 한화의 재도약 발판을 만들었다. 한화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체제로 2021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두 번째 투수 결정이 가장 어렵다."
박경완 SK 전 감독대행=8월 7일 롯데전을 앞두고 전한 고충. 박경완 전 대행은 염경엽 전 감독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쓰러진 뒤 지휘봉을 잡았다. 1군 사령탑의 어려움은 예상보다 컸다. 그는 "막상 하다 보니 막히는 게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선발 투수를 언제 바꿀지, 두 번째 투수로 누굴 내보낼지 특히 고민했다고 한다. SK는 시즌 내내 악재 속에서 싸워 9위를 기록했다. 2021시즌은 새 사장·단장·감독 체제로 맞이한다.
"현장의 느낌도 중요하다."
허삼영 삼성 감독=10월 6일 LG전 대타 교체 배경을 설명하며 남긴 말. 허삼영 감독은 1-2로 뒤진 9회 초 1사 1·2루에서 장타력이 있는 이원석 대신 교타자 강한울을 투입했다. 강한울은 볼넷을 얻어냈고, 강민호의 희생플라이로 동점을 만들었다. 삼성은 연장 승부 끝에 3-2로 이겼다. 전력분석 팀장 출신 허삼영 감독은 '데이터 야구'를 추구한다. 그러나 이때는 이원석의 타격 밸런스가 흔들리는 걸 주목했다. 데이터에 직관을 접목한 그의 두 번째 시즌이 기대된다.
"8월에 치고 올라간다."
허문회 롯데 감독=롯데가 8위까지 떨어진 7월 초 남긴 말. 팬들은 '8·치·올'로 줄여 불렀다. 허문회 감독은 롯데 선수들의 체력을 아낀 뒤 다른 팀들이 지치기 시작하는 8월에 승부를 걸겠다는 계산이었다. 롯데는 8월 치른 23경기에서 승률 0.636를 기록하며 잠시 반등했다. 그러나 전반기 잃은 승수를 만회하지 못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20년 시행착오가 허문회 감독에게 자양분이 될지 관심이 모인다.
"두산·LG 이길 방법 찾겠다."
맷 윌리엄스 KIA 감독=10월 22일 한화전을 앞두고 전한 2021시즌 각오. KIA는 9월까지 5위를 지켰다. 그러나 10월 27경기에서 승률 0.370(10승17패)에 그치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 기간 두산에 4패, LG에 3패(1승)를 당한 게 치명적이었다. 상대 전적도 약했다. 두산에 3승13패, LG는 5승11패였다. KIA 간판타자 최형우와 1선발 애런 브룩스가 잔류했고, 빅리거 출신 다니엘 멩덴이 가세했다. 2021시즌은 재도약을 노린다.
"채울 것이 많아 사퇴하게 됐다."
손혁 전 키움 감독=키움은 10월 8일 "손혁 감독의 자진 사퇴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여기에 손혁 전 감독이 자책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정규시즌 종료가 3주 남은 상황에서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확정된 팀의 감독이 물러났다. 자진 사퇴가 아니라 경질됐다는 의혹이 커졌다. 구단은 김창현 퀄리티 컨트롤코치를 감독대행으로 내세웠다. 키움은 5위로 떨어졌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패해 가을 야구를 마쳤다.
"작년과 똑같은 순위로 마쳐 죄송하다."
류중일 전 LG 감독=11월 5일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PO) 2차전 패전 뒤 남긴 말. LG는 정규시즌 143번째 경기까지 2위를 지켰다. 그러나 시즌 최종전에서 4위로 주저앉았다.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팀 분위기가 처진 채 포스트시즌을 치렀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과했으나, 준PO에서 '잠실 라이벌' 두산에 2연패를 당했다. LG는 류지현 신임 감독을 선임했다.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이강철 KT 감독=셋업맨 주권의 '혹사 논란'이 생길 때 전한 말. KT는 시즌 50차전까지 23승27패를 기록하며 리그 8위에 머물렀다. 이강철 감독은 박빙 승부에서 주저 없이 주권을 투입했다. 주권을 3경기 연속 내보내는 등의 승부수를 던졌다. 이강철 감독은 "1점 차 경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시기에 쌓은 승리가 모여 KT는 5할 승률을 회복했고, 이후 2위까지 올라갔다. KT는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단기전은 실험하는 무대가 아니다."
김태형 두산 감독=KT와의 PO 2차전을 앞두고 한 말. 김태형 감독은 두산을 6년(2015~20시즌) 연속 한국시리즈(KS)로 이끌었다. 특유의 '직관 야구'가 2020 포스트시즌에서도 빛났다. 타자와의 승부에서 기세가 밀리면 선발투수를 1회라도 강판시켰다. 변칙이 아니라 그의 원칙이었다.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투수를 기용하는 것이다. 선택이 실패해도 변명하지 않는다. 두산은 KS에서 NC에 우승 트로피를 내줬다. 그러나 두산의 가을은 또 뜨거웠다.
"내 야구는 '선수가 하는 야구'다."
이동욱 NC 감독=KS 우승 뒤 진행된 공식 인터뷰에서 남긴 말. 이동욱 감독은 선수 시절 비주류에 가까웠다. 지도자의 길도 순탄하지 않았다. NC 감독이 돼서도 '무명'이라는 말을 들었다. 데이터 활용·해석의 전문가인 그는 부임 2년 만에 NC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무명 대신 '명장'이라는 말을 즐길 법도 했지만, 그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우승 후 여러 인터뷰에서 "감독의 임무는 선수가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