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전화기 저쪽 롯데 자이언츠 외야수 민병헌(34) 목소리는 무겁지 않았다. 이날 롯데 구단은 민병헌이 뇌동맥류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뇌동맥류는 뇌혈관 벽 일부가 약해지면서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질환이다. 뇌출혈로 이어질 위험도 있지만, 조기에 발견해 꾸준히 치료를 받았다.
민병헌은 “2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가족력이 있어 줄곧 체크하고 있었다. 시즌 뒤 정밀 검사를 받고 수술 날짜(22일)를 정했다”고 말했다. 그의 부친은 그가 중학생일 때 뇌출혈로 별세했다. 그는 “아버지와 똑같은 곳이 아파서 어머니한테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소식이 전해진 뒤) 전화를 많이 받았다. 다들 우울한 목소리다. 나는 정말 괜찮다”며 웃었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2019년부터 치료를 받아왔다. 개인적인 부분이라 공개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민병헌도 드러내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수술 일정이 잡혀 다음 달 시작하는 스프링캠프에 참여하기 어렵게 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개했다.
2018년 자유계약선수(FA)로 롯데 유니폼을 입은 민병헌은 2시즌 연속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WAR, 스탯티즈 기준) 3점대를 기록했다. 2018년 팀 내 4위, 19년 2위다. 2019년에는 투구에 손가락을 맞아 43경기에 결장했는데도 그 정도로 활약한 거다.
지난해 데뷔 후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109경기 타율 0.233, 2홈런, 23타점. 뇌동맥류는 두통을 동반한다. 운동하는 데 치명적 문제는 아니지만, 고생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참으로서 팀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에 성적 부진까지 겹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민병헌은 최선을 다했다. 시즌 중 2군행을 자처했지만,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어달라”는 허문회 롯데 감독 부탁을 받아들였다. 부진한 탓에 벤치를 지켜도 더그아웃에서 목청 높여 선수들을 독려했다. 그는 롯데 이적 후 “힘들다”는 얘기를 가끔 했다. “몸이 아픈 건 아니다”고 했지만, 구단 내 소수 관계자는 그의 질환을 알고 있었다. 그는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걸 핑계로 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행히 뇌 신경까지 손대는 수술이 아니라서 운동 기능에 큰 영향은 없다고 한다. 의료진에 따르면 수술 후 2~3개월 회복이 필요하다. 5월은 돼야 정상적인 훈련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민병헌은 야구계의 소문난 악바리다. 학창 시절부터 ‘어머니와 동생을 위해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두산 시절 두꺼운 선수층으로 기회를 잡지 못해 좌절도 했다. 그래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코치들이 “너무 많이 하지 말라”며 만류했다. 야간훈련을 밥 먹듯 했다. 지금은 부상 위험으로 자제하지만, 현역 몸맞는공 15위일 만큼 온몸을 던졌다. “어디 부러지지 않으면 나가야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민병헌은 “베테랑 선수로서 끝까지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안 좋은 소식을 전해 죄송하다. 빨리 돌아와서 건강한 모습으로 팀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그는 약속하면 지켰다. 이번에도 꼭 그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