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회장을 향한 한국배구연맹(KOVO)의 과도한 의전이 선수를 들러리 신세로 만들었다.
조원태 한국배구연맹은 지난 26일 도드람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GS칼텍스전이 열린 인천 계양체육관을 방문했다. 경기 전 신무철 KOVO 사무총장이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올스타 시상식을 마친 뒤, 조 회장이 올스타 최다득표 1위 김연경(흥국생명)에게 트로피와 꽃다발을 건넸다. 이때 한 선수가 등장했다. 남자부 최다득표 1위 신영석이었다. 조원태 회장은 김연경과 신영석을 양 옆에 두고 기념촬영을 했다.
프로 스포츠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소속팀의 경기가 없음에도, 남자부 선수가 상을 받으러 여자부 경기가 열린 체육관을 찾은 것이다.
KOVO가 조원태 회장의 경기장 방문 소식을 접하고선, 한국전력에 신영석의 시상식 참가를 사전 요청했다. KOVO는 "올스타 최다득표 선수에게 총재가 직접 시상하는 것이 낫겠다는 내부 의견이 모였다. 김연경 선수가 이날 상을 받으니, 남자부 1위 신영석까지 같이 상을 받는 그림(모습)이 좋을 것 같아 추진했다"라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항공 업계가 어렵고, 아시아나 항공 인수 합병 문제까지 안고 있는 조 회장이 직접 연맹에 "김연경·신영석의 공동 시상식을 추진하자"고 제안했을 리 만무하다. KOVO 사무국 직원들이 조 회장 방문에 맞춰 '특별 의전'을 준비한 것이다. 연맹 관계자의 "그림이 좋을 것 같아서"라는 말에 답이 있다.
현장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한 관계자는 "(경기가 없는) 신영석 선수가 여자부 경기가 열린 계양체육관에 나타나 깜짝 놀랐다"라고 했다. 이어 "우리 구단이었으면 절대로 선수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신영석은 단 1분도 되지 않는 시상식을 위해 왕복 두 시간이 넘는 먼 길을 오갔다.
KOVO의 해명은 황당하다. 관계자는 "한국전력이 내일(27일) 경기가 있었으면 사전 협조를 요청하기 불편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한국전력은 시상식 이틀 뒤인 28일 우리카드와 경기를 앞둔 터였다. 이 관계자는 "내일모레(28일) 경기가 있어서…(괜찮다고 여겼다)"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답을 내놓았다.
안일한 판단이다. 프로 선수는 몸이 재산이다. 훈련뿐만 아니라 휴식도 중요하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게다가 KOVO는 한국전력과 신영석의 훈련에 지장을 초래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KOVO는 한국전력 구단에 "신영석이 팀 훈련을 일찍 끝낸 뒤 시상식 장소(계양체육관)로 이동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결국 신영석은 따로 훈련해야만 했다. 한국전력은 26일 오전 훈련장이 있는 의왕에서 체력 훈련을 했고, 오후에는 코트 적응 차원에서 이틀 뒤 홈 경기가 열리는 수원실내체육관에서 6시까지 팀 훈련을 했다. 하지만 신영석은 시상식 참가를 위해 이보다 훨씬 일찍 훈련을 마쳤다. 퇴근 시간 교통 체증도 고려했다. 그래서 한국전력은 신영석을 홀로 의왕 숙소에서 개인 훈련하도록 조치했다.
결국 신영석은 팀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이다. 훈련 시간은 짧았고, 효율은 떨어졌다. 신영석은 국가대표 센터로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 크다. KOVO는 특정 팀의 훈련과 경기력에 지장을 초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공동 시상식'을 진행했다.
KOVO는 "한국전력이 거절했으면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선수단 연봉을 공개해 KOVO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한국전력으로선 거절하기 어려운 요청이었다. KOVO와 남자부 구단은 내년부터 연봉을 공개하기로 합의했는데, 한국전력은 올해 연봉을 미리 오픈했다. "연봉 계약의 투명화를 선도하려는 구단의 강한 의지와 팬들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한국전력은 KOVO로부터 제재금 1000만원을 부과받은 바 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조원태 회장님이 직접 시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KOVO의 흥행을 위해 수락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일간스포츠의 취재 결과 'KOVO의 요청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구단과 선수, 코칭스태프 모두 흔쾌히 수락하지 않았다'는 내부 의견을 확인했다
KOVO는 지금껏 특정 선수의 시상식을 해당 소속팀 경기 시작 전 거행했다. 올스타 시상식 역시 마찬가지다. 27일 남녀부 경기 전엔 문용관 경기운영실장과 류근강 심판위원장이 현장에 있던 선수에게 트로피를 건넸다. 선수(신영석)가 총재로부터 직접 상을 건네받는다고 특별히 더 영광스러운 건 아닐 것이다. 결국 조원태 총장을 향한 KOVO 사무국의 과잉 충성이자, 무리한 의전이다. 정작 가장 주인공인 선수는 뒷전이었다. 그러나 연맹은 아직도 무엇이 잘못인지 전혀 못 느끼고 있다.
과연 신영석은 이날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았을까?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